여행은 나의 또 다른 피난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환경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현재 부닥친 어려움은 지나가는 과정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겠는데 표정이 밝지 않다.
뭔지 모를 불안은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곤 한다.
좀 더 평화롭고 여유로운 미래를 꿈꾸지만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늘에 서 있는 나.
내면의 갈등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다.
확 죽어 버릴까 그런데도 살아야 할까.
누가 뭐래도 살아야 한다.
가끔 힘들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 잠잠히 나를 위로하는 아버지에게로 간다.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사랑으로 충전된 에너지가 참 좋다.
노후를 포기하면 현재의 씀씀이가 즐겁고, 지금 주어진 황금 시간을 쓰지 않고 저축하면 노후가 즐거울까.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을 맘껏 담아보려고 한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임을 알기에.
물론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환경에 얽매일 때도 있다.
약간 이기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나만의 철칙을 고수하는 편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때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피난처가 되기도 하지만,
나의 수고를 오롯이 가족 구성원들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지는 않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다 나은 미래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런 미래 때문에 오늘을 양보할 순 없다.
가장 나답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면 당장 실행에 옮겨보자.
그래서 난 여행을 택한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저축대신 오늘을 산 것이 내겐 더 소중하기에 비교적 자주 여행을 떠난다.
푸른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뉴질랜드 남섬의 양 떼들.
빙하에서 흘러나온 물에 주변의 암석 성분이 녹아들어 아름다운 터기석과 같은 밀키블루색을 띠고 있는 테카포 호수.
도로를 따라 퀸스타운을 둘러싼 호수들.
푸른 물에서 솟아오른 듯한 절벽에서 흐른 크고 작은 폭포들.
틈새로 보인 바위 위에서 정오의 햇살을 요염하게 즐기고 있는 작은 돌고래의 여유가 이렇게 부러울 줄이야.
퀸스타운에만 있다는 햄버거 퍼그버거를 먹기 위한 기다림의 수고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햄버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최고였다.
언젠가 그 맛이 그리워질 때 다시 떠나지 않을까 싶다.
호주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린다는 블루마운틴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때 내 안의 불평들이 흩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을 따라 몸을 돌리자 묵은 체증이 해소되는 듯 짜릿하고 통쾌했다.
오페라하우스 내부에 있는 빈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그 웅장함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다음엔 공연을 관람해 봐야지.
여행은 나의 또 다른 피난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