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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으로 치료되지 않는 마음

by 고정문

원시시대에 먹잇감을 위해 사냥을 나서듯, 현대사회는 급여를 받기 위해 출근을 한다. 회사를 다니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월급'이다. 한 달에 한 번 '띵동! 한 달 동안 수고했습니다!' 하며 울리는 입금 알림은 회사에서의 내 존재에 대한 유일한 인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따박따박 일해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나름대로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가끔 사치도 부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월급 받는 직장인'이란 평범하거나, 그 이상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첫 월급을 받았던 그날부터도 별 감흥이 없었다. 통장 자릿수가 바뀌는 것도 아니요, 티 안 나게 숫자 몇 개가 달라질 뿐이다. 내가 경제관념이 없는 것인지, 배부르게 살아온 탓일지. 매 달 알림이 들어온 1초 기쁘고, 곧바로 실망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고작 200-300만 원 언저리의 돈이 내 시간의 가치인가? 나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저 사람보다 내가 못한가? 오히려 비교하게 되고, 섭섭하게 됐다. 내 시간을, 내 젊음을 이 월급을 위해 바치기에 퍽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 때, 이런 마음이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라서라고 생각해서, 일명 '자본주의 치료'를 몸소 체험해보기로 했다. 실제로 회사 잘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주기적으로 여행도 가고, 값나가는 명품으로 한 번씩 기분도 내고, 오마카세도 한 번씩 '플렉스'한다.


나도 나름대로의 '플렉스'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쏘고, 안마의자를 놓아드렸다. 호텔 코스요리도 먹어보고, 피부과 패키지도 끊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쏠게!'도 한 번씩 거행했다.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겼다.


이런 자본주의 치료가 일시적으로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는 하였으나, 결국 계속해서 본질적인 의문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이렇게 치료를 받아야 할 거라면, 처음부터 상처를 입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상처를 주는 것도 회사요, 치료를 할 수 있는 돈을 주는 것도 회사라면, 둘 다 안 받으면 되는 것 아닐까?


나의 시간과 월급을 교환하는 '회사와의 계약'이 오히려 내게 손해라는 생각에 미치자, 출근해서 퇴근하는 시간이 아깝고 힘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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