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걸었으나 그 길이 나의 길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탐색 없이 걸은 경우,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답을 찾아야 한다.
나를 알고 시작점을 정했다면, 지금껏 지어 온 집을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집을 지으면 된다.'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김은주> 중-
2천 원 추가다. 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걸었다 생각했는데, 그저 길이 있어서 걸은 나였다. 이제 와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자니, 나는 점점 공허해져만 갔다.
사실 일의 많고 적음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이 너무 많았던 해도 있었고, 일이 적어 매일 칼퇴를 했던 해도 있었다.
일이 많은 해에는 밀려드는 일과 떠넘기기 문화에 질색을 했고,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힘들었다.
일이 적은 해에는 다들 달려 나갈 때 혼자 모니터만 바라보고 정체되어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럼 일이 적당할 때에는? 여전히 이 일을 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자꾸 창밖을 내다보는 나였다.
순환근무에선 버티다 보면 일이 많기도, 적기도 하고, 잘 맞기도, 안 맞기도 한 법이라지만, 그런 애꿎은 희망에 미래를 기대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가 회사를 사랑할 수 있고, 주어지는 일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이 회사에서 가장 잘 맞는 일을, 가장 잘 맞는 사람들과 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까?'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이곳에서 내가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본질은, 내가 이 회사와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그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왜 나는 이 일을 사랑하지 못하였는가? 내 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가야 할 길이 아니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선택하자고.
가야 할 길이 어딘지는 여전히 미궁이었으나, 가지 말아야 할 길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시작점을 다시 정했으니, 지금까지 지어온 집을 아깝다 생각하기보다는 새로 짓는 집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