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 사람과 만나 첫 데이트를 한 뒤로, 도대체가 헤어짐을 염두에 두지 않은 날이 없다.
여러 소개팅에서, 애프터 이상 성사된 적이 없는 나에게, 이 사람은 이제 그만 자기와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직진했다. 스물일곱이 되도록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난 경험이 전무한 나였으나, 주변 친구들이 축하해주는 걸 보면, 이 사람, 꽤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나를 멋진 사람으로 대접해 줄 것만 같았고, 나도 제법 그가 원하는 것을 맞춰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진지한 만남을 갖기로 결정한 첫날부터, 내 환상은 와장창 깨졌다. 나를 멋진 사람으로 대접해주기는 개뿔, 나는 그에게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그는 사무실에 밀려드는 전화를 받아달라고, 쌓여있는 자기 일 좀 정리해 달라고, 평일 하루 8시간을, 때로 그 이상을 나에게 강요했다. 그리곤 매달 내게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쥐어주며, 고생했다며 위로했다. 이렇게 나를 대하는 사람을 정말 계속 만나야 하는 거야? 고민이 4년 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여태 만난 건, 이 사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들 그렇게 지내는 것 같았으니까. 이 사람과 만나는 나는 '보통'의 그럴싸한 나였으니까. 그냥 이대로 버티고 견디면 나름 보통이상은 살겠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한편으론, 매일 이별하고 다른 멋진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꾸었으나, 이렇다 할 대안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양보하면, 이 사람도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이 사람도 변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이 사람을 만난 지 3년째 되던 해, 나는 서른이 되던 해에, 이제는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닌 인생을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1년 간 유예기간을 가지면서, 정말 내 마음이 확신이 드는지 돌아보고, 연말에 헤어짐을 고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점점 이 사람은 내게 더 못되게 굴었다. '너, 이 정도는 나 도와줄 수 있지?' 라며 더 많은 일을 내게 시켰고, 친구들의 일까지 내게 떠 안겼다. 매일매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 그래도, 내게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함께한 정이 있는데, 나 없으면 이 사람은 안되는데, 스스로 되뇌며 1년을 더 견뎠다.
그리고 어느덧 그와의 이별이 다가왔다. 이제 그만하자는 나의 말에, 무미건조하게 알겠다고 했다. 함께 지내던 것들만 잘 정리해보자고 한다. 내가 고민한 것만큼 그는 별로 타격이 없는 듯했다. 내 감정 따위 끝까지 생각 않는 사람이다. 그를 배려한 몇 년이 후회스러워지면서도, 나를 잡지 않으니 안전이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떠나 오던 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쏟은 진심의 반도 알아주지 못하는 그에 대한 서운함, 젊은 나의 청춘에 대한 애도, 마침내 그와 좋은 결과가 아닌 이별을 맞이한 내 모습에 대한 슬픔.
오만 감정이 섞인 눈물을 다 쏟은 후,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니 마음이 개운하다. 이제.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