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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풍이 퇴사에 미친 영향

by 고정문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남자친구는 나의 퇴사를 불안해한다. 나 스스로는 지금의 이런 불안정함이 이렇게도 만족스러운데, 왜 정작 남자친구는 본인도 아닌 내 퇴사를 저렇게 불안해할까? 도대체 우리 둘의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평생을 자라며 보고 배워온 '밥벌이의 형태'는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평생을 직장인으로 사셨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실 정도로 잘 자리 잡으신 것 같았다. 반면 우리 아버지는 직장을 잘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턴가 자영업자가 되었다. 여태 사업을 한다고 열심히 돌아다니시는 걸 보면, 우리 아버지도 나름대로 잘 자리를 잡으신 것 같다.


두 아버지는 모두 자식들을 잘 건사해, 길바닥에 나앉는다던지, 가정이 파탄난다던지 하는 큰 굴곡을 겪게 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자식인 우리는 자연히 부모님의 삶대로 사는 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늘 회사로 출근을 하셨다고 한다. 매달 꼬박 들어올 돈이 명확하였고, 크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다니며 두 아이들을 대학까지 잘 보내셨다.

남자친구 또한 참치회라거나 장어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자기가 아는 한도에서는(치킨이라던지 돈가스, 삼겹살 등)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자란 걸 보면, 부족함 없이 잘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삶에 부족함이 없이 가족을 잘 건사하기 위한 출근이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 삶, 수입이 불투명한 삶이 불안정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에게는 고정수입이 사라지고 소속이 사라지는 것이 큰 불안이었을 것이다.


반면, 우리 아버진 내가 부르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정도로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시곤 했다. 은행업무를 보지 못하고 회사에 발이 묶인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학부모회도 아버지가 나올 정도였다.

금전적인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돈 걱정 없을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외식을 할 때 삼겹살을 추가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것이라던지,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나름 여유가 있는 집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가 갑자기 직장에 소속되어 노동자가 되니, 불안함이 생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게 자유가 없는 삶,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을 바라는 삶은 나에게 너무 큰 불안이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부모님을 답습한다. 때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더라도 벗어나기 힘든 가풍의 영향이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그리 가깝지도 친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내 모든 삶에 묻어있는 부모님의 모습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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