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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새꽃 Jan 24. 2025

또 다른 고통

말 한마디

할머니 임종을 볼 때 작은 딸을 업고 봤다. 그래서일까?

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을 자다 깨면 손가락으로 한 장소를 가리키며 귀신이 있다고 했다. 한 번은 그러려니 했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달래고 했는데  딸의 행동은 거칠어졌다. 마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다 깨서 보면 눈이 돌아가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이었다. 남편도 없는 상태 홀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어쩌다 오는 게 전부였다.

하도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달래기보다 화를 내고 때리니 좀 누그러지고 친정엄마가 절에 다니셔서 팔찌를 꼭 끼워 주었다. 모르고 팔찌가 빠진 날에는 눈이 돌아가서 헤매는 딸에게 팔찌를 끼어주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잠을 잤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8년 동안 이어졌다.

분가를 하고 나서 허전함이 감돌까 싶어 매주 서울을 다녔다. 8살 6살 아이를 데리고 반찬을 해서 말이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말이다. 여름 방학에는 거의 서울에서 살았다. 제사를 지내면 전을 부쳐서 아이들 데리고 다녔다. 큰 딸은 무난하게 자라주었지만 작은 딸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넘어지면 타박상인데 딸은 골절로 이어졌다. 6살 유치원에 다닐 때는 친구가 살짝 밀어다고 하는데 어깨에 골절을 당해서 수술까지 했다.


겨울에는 만두를 빚고 곰탕을 끊여 얼려서 서울에 가고 했다. 가면 대청소를 하고 밥상을 차리며 가게도 도우며 살았다.

또 어이상실 이야기가 나온다. 반찬과 김치를 해서 다니던 나에게 하는 소리 어머니왈 " 너의 시아버지가 네가 해오는 거 맛없다고 한다." 대놓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참 말도 이쁘게 신다. 애들 둘 데리고 다니는 것도  힘든데 반찬은 안 해와도 된다 하시면 어때서 그리 말을 하는지 기가 찼다. 어느 며느리에게 밥 제대로 얻어 드시지 못하면서 나에겐 그리 모질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또 사건이 있다. 어머니 환갑에 모아둔 돈으로 병원비 다 내드리고 남은 돈마저 다 드렸는데 기가 막힌 소리를 하신다. 당신 여행 가시는데 집에 와서 아버님 밥상을 차려주라고 하는 것이다. 그 당시는 토요일에도 수업이 있었던 터라 망설이며 전화를 받았더니 하시는 소리 " 네가 환갑때 해 준 게 뭐가 있냐고 그것도 못해주냐고" 기가 찰 노릇이다. 해 준 게 없다고 사람이 뻔뻔해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서울 사는 며느리도 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토요일에 놀아서 서울에 가서 시아버지 밥상을 챙겨 드릴 수 있었다. 나란 사람도 참 미련하고 바보였다.

시간이 지나서 트라우마로 남아서 나를 더 힘들게 하고 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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