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집구석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제사를 가져왔다. 시댁은 장소가 비좁고 해서 하룻밤 잘 수도 없어서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나의 바보 같은 결정이 나를 미치게 할 줄이야.
지방 사는 동서는 어쩌다 오는 경우가 많았고, 둘째는 아들에게 올인하느라 제때 와서 음식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타이밍도 얼마나 잘 맞추는지 설거지하고 손 털고 뒤돌아서면 오는 것이다.
저녁도 준비를 하면 동작도 느려서 시켜 먹기 참 어려운 사람이다. 알아서 하면 좋으련만 시키는 것만 하는 스타일이다. 손 빠르고 동작 빠른 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처음 이사와서 제사를 보러 왔는데 둘째 놈이 우리집 구석구석를 열어보며 검열을 하는 것이다. 냉장고며 싱크대까지 별 미친 것이 청소 좀 하고 살란다. 해줄거 아니면 내 살림 뭐라 하지 말라 했다. 나의 별명이 딱새일 정도로 우리집은 완벽했다.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깨끗 그 자체. 아이들 5명이 지나간 자리는 당연히 어지럽혀 있는게 정상인데. 그후로 명절이나 제사가 오면 스트레스 만땅 대 청소를 하고 또 했다. 약점을 잡히는 게 너무 싫은 나였다.신경이 곤두선다.
명절이면 하루 자고 갔는데 음식을 시작하면 남자들은 티브와 놀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았다. 내가 전 부칠 양념까지 다 해주면 동서 둘이 전을 부치면 난 나물 볶고 삶고 무치고, 달걀 삶고 생선 굽고 산적하고 오징어 삶고 가스렌즈 4구를 사용하고 그릴까지 한꺼번에 사용하면서 일을 했다. 전을 부치면서 나오는 설거지까지 다 하면서 하는데 부치는 전은 세월아 하면서 부친다. 식혜며 떡까지 했고, 때론 약과도 하기도 했으니 미쳤음이 분명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 집이다.
술을 미리 사놓을 때의 일이다. 술안주까지 마련해 주면 얌전하게 먹으면 괜찮다. 남편은 한두 잔 마시면 끝이었고 그때는 보조를 맞춰주기 위해 나도 술 몇 잔 마시던 시절이었다. 막내동서랑 둘째 시동생이 참 말도 이쁘게 했다. 동서는 5살 아래이고, 둘째 시동생은 2살 위다. 그래도 형수는 형수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술이 들어가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 ×가 있을까 싶다. ( 욕을 할 수밖에 없으니 참아주세요).
동서년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둘째 놈도 이름을 부른다. 어느 누가 말리는 경우는 없다. 야 그건 아니다고 해도 술만 쳐 먹으면 개가 되어 형도 형수도 다 지아래 사람으로 여기는지 술을 안 먹어서 모른다며 이름을 부른다. 개 같은 집안이 어디 있나 모르겠다. 한 번이면 그렇다고 치지만 술만 먹으면 지랄들이라 그 후로는 술상을 차리지 않았다. 나가서 먹고 오면 명절날 아침에는 제때 일어나 탕국을 끓이거나 밥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밥을 하고 탕국을 끓이고 나면 그제야 주방에 나온다. 열을 식히고 차례를 지나고 나서 또 잔소리 시작이다. 김치는 없냐. 뭐가 빠졌다 그러는 것이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시어머니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다음에는 백김치하라 한소리 거든다. 환장할 집구석.
제사 비용을 내놓는 때도 있고 그냥 가는 때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녹두전을 하라고 해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하게 되었다. 녹두를 불려 까고 하는 수고는 생각 안 하고 미친 것이 하는 소리가 지 마누라 전 많이 해서 엉덩이 짓무른다고 하는 것이다. 그게 할 소린가. 미친것이지. 도와줄 거 아니면 신경 쓰지 말라해도 개새끼는 한소리 더 하고 난리 일하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막내동서에게 하는 개소리 일하기 싫죠. 술이나 마시자는 것이다.
나이 어린 형수가 종종거리며 하는 게 미안하지도 않나 막소리 나 해대고 짜증이 난 내가 심통을 부리자 남편 하는 소리가 더 기가 차다. 왜 우리 집 식구들이 너 눈치를 봐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내 눈치 보지 말고 알아서 살아 하니 골프채를 들고 나오며 휘두르는 것이다.
발로 차고 난리가 아니었다. 배운 게 싸움이니 때리는 것도 닮았다. 신혼부터 작은 싸움으로 다투면 뭐든 던지고 때리기도 했다. 맞으면서 왜 살았는지 나도 병신짓을 했다. 배를 발로 차서 별이 보이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곳을 때리면서 무식하게 대했다.
왜 이혼을 하지 않았냐고 할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큰 언니가 가정을 제대로 꾸리고 살지 않아서 아이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봐서 나는 절대 이혼은 안 할 거라고, 신혼때 두가지 약속을 서로 했다. 큰 잘못을 해도 , 한번은 봐주기 이혼은 절대 하지 말자였다.
아무도 모르게 폭력은 지속적으로 있었다. 크게 싸우면 아이들을 내보내고 싸웠다. 그건 다행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보지 못했으니까.
골프채를 휘두르고 난리를 피웠으면 그만인데 시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제사만 지내면 달래는데 둘째 입단속 좀 하라고 안 그러면 때려죽인다고 하는 것이다. 참나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셈이 되었다. 매번 내가 쌍심지를 켜고 자기네 식구들을 엿 먹인다고 생각할 거 아닌가. 그 당시 시아버님은 뇌출혈로 인해 한쪽 마비와 후두암으로 인해 말씀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욕조가 없고 추워 제대로 목욕도 못하시는거 같아 오시면 목욕을 시켜 드리고 보내드려야지 했는데 난리를 쳐서 그냥 가시게 됐다.
며칠후에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이상하다고 왔다 가라는 것이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시댁에 도착해서 아버님을 뵈었는데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가시자고 하니 괜찮다고 하시면서 손녀 둘 걱정을 하시는 것이다. 난 아버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바나나 우유와 참외를 깍아 드리면서 곁에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아들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왔다. 둘이 있을 때는 말도 잘 하시던 분이 다른 사람들이 오니 눈을 감으시고 뜨지도 않으시는 것이다. 핏줄 타령을 하시던게 생각이 나서 일부로 일으키고 눈을 강제로 뜨게 하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으신 것이다.
다른 자식들은 먼저 가고 우리 가족은 하룻밤을 자고 나서 저녁 무렵이 되어서 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셔서 그냥 또 올게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전화가 왔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늘 나는 뭐든 해 놓고 세상을 떠나실 때 좋은 모습으로 떠나보내질 못했다.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 싸움을 보고, 시아버님은 아들부부의 싸움 이야기를 듣고 가셨다. 잘하고도 한으로 나에겐 남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