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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01. 2020

아빠의 '고양이' 금지령

네가 고양이 별로 돌아가는 그 날의 나는 어떨까.

집사


 "안 된다. 사랑이까지 못 키운다."

 "네에에? 그럼 사랑이는 어떡해요?"

 

 아빠의 '고양이'금지령이 내린 아침이었다. 사랑이를 처음 만난 8월로부터 벌써 몇 주가 흘렀다. 그동안 수의사 선생님도 뵙고 왔고, 이제 사랑이도 조금씩 고양이다운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다리를 핥기도 하고, 핥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분유와 함께 불린 사료도 조금씩 먹고 있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결정되어 8월 초부터 부모님 댁으로 내려와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시  출근을 하라는 연락이 와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때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사랑이를 누가 돌볼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밥을 먹으면서 슬쩍 사랑이가 부모님 댁에서 계속 사는 것에 대해 운을 띄웠다. 그리고 말을 하자마자 댕강! 하고 '고양이'금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설마설마했지만 정말 안 될 줄이야...'


 부모님은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신다. 그리고 우리 게스트하우스에는 이미 고양이 '우루'와 '명랑'이, 다 큰 진돗개 '사월', 그리고 사랑이를 발견했던 '사노'까지! 무려 총 네 마리의 동물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사랑이도 '은근슬쩍'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전혀 반대였다.

 

 고양이 금지령이라니. 막막했다.


 그때였다.

 "엄마는 우루랑 명랑이가 떠나면 이제 고양이를 더 이상 안 키울 거야. 사랑이를 위해서라도 다른 집으로 입양 가야 할 것 같다."

 나의 황당한 표정을 보던 엄마가 잠시 생각을 하시다가 말씀하셨다. 우루와 명랑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에는 뭔가 그리움이 느껴졌다. '지금 아이들 이후에 더 이상의 고양이는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눈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던 첫째 고양이 '명태'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는 작년 10월, 몸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진 명태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동물 병원에서는 명태가 급성 복막염이라는 검사 결과와 함께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엄마는 단 며칠 만에 명태를 고양이 별로 떠나보냈다.

 그 당시 나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울음 섞인 엄마의 전화로 명태의 상태를 전해 듣고, 나도 그 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다. 타지 생활을 하는 나는 경주에 내려갈 때만 명태를 만나왔다. 그래서 명태와의 추억이 거창하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명태에게 잘해주지 못한 같아 미안했고, 아픔을 숨겨왔을 명태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한동안 명태의 이름을 듣거나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났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도 명태 생각을 하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명태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살다가 갑작스레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예쁜 우리 명태


 내가 그 정도였는데, 명태와 매일매일을 함께 보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마음이 미어지듯, 찢어지듯 아팠을 것이다. 엄마는 명태의 고양이 별로 보내주고 온 날부터, 홀로 명태의 빈자리를 고스란히 그리움으로 채워갔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과도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엄마는 앞으로 찾아올 그 날의 빈자리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많이 힘드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옆에서 지켜봤을 아빠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사랑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고작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사랑이에게 애정이 많이 생겨버렸다. 그동안 분유 먹이고 똥오줌 닦아주고 골골거리는 소리 들으며 같이 낮잠도 자면서 사랑이에게 빠져버렸나 보다. 다른 누군가가 사랑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고양이를 키울 자신도 없었다. 서울에서 자취하며 내 밥도 잘 못 챙겨 먹는 주제에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랑이와 함께 산다면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사랑이가 고양이 별로 돌아간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그 날의 내 감정을 다스릴 자신이 없었다. 엄마처럼 씩씩하게 그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결국 슬픔이 찾아온다면, 그냥 행복하지 않고 슬프지도 않은 것이 더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섣불리 책임감을 발휘했다가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사랑아, 너를 어떻게 하면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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