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인간인 '언니'가 갑자기 사라진 지 네 번째 날이 되었다. 내가 배고플 때 맘마를 주는 인간도 바뀌었다. 내가 응가를 하고나면 항상 몸을 닦아주던 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매일매일 언니랑 같이 가지고 놀던 쥐돌이 장난감을 혼자 가지고 놀려니 너무 심심했다. 물론 언니가 없어도 나는 빼먹지 않고 사냥훈련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나는 언니에게보여주기 위해 쥐돌이를 공략하는 방법을 다섯 가지나 더 만들어두었다.
'내가 쥐돌이를 사냥하는걸 빨리 보여줘야 하는데...'
드르륵.
오늘도 언니가 아닌 다른 인간이 맘마를 주러 왔다. 이 인간도 나한테 '사랑'이라고 부른다. 언니가 단단히 일러두고 갔나 보다.
언니는 사냥을 하러 꽤 멀리 갔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못 보러 오는 것이 틀림없다. 매일 "사랑아~"하고 불러주던 괜찮은 인간이 없으니 나의 콩닥이는 심장도 심심해하는 것 같았다.
언니는 사냥을 하러 어디쯤 갔을까? 엄마가 사냥을 해오던 강가 할아버지네 사과나무 밭까지 갔을까? 아니지, 아니야. 언니는 다리가 두 개밖에 없어서 엄마처럼 멀리 가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럼 옛날에 우리가 살았던 이웃집 할머니 댁 지붕까지 갔을까? 하지만 언니는 우리 엄마처럼 높은 곳을 오를 때 꼭 필요한 발톱이 없다. 죄다 둥글둥글한 발톱만 있는 언니는 이웃집 할머니 댁 지붕을 오르는 것을 힘들어 할 것이다.
언니는 다리도 우리보다 적고, 발톱도 미끌미끌거리고, 몸에는 털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먹고 사는 걸까?
"휴... 혼자 사냥도 못할 텐데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나는 창가에 앉아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였다. 나의 한숨에 대답이라도 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아기 고양이. 넌 진짜 내 발보다 작구나. 몇 살이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향하니, 하얀 털로 덮인 기다란 다리가 보였다. 긴 다리를 따라 올라가니, 엄청나게 큰 동물이 있었다. 엄마의 말씀이 생각났다. 저건 멍멍이다!
"나는 너를 알아. 우리 엄마가 말해줬어. 우리랑 비슷한데 입이 앞으로 삐쭉 나오고 매일 쓸데없이 꼬리를 흔들어내는 동물을 멍멍이라고 했어. 너 멍멍이 맞지?"
"멍멍이라... 그렇게 불리기에는 나는 너무 어른이다. 어른 멍멍이는 인간의 말로 '개'라고 부른다!"
"너는 어른 멍멍이구나. 넌 어른이라서 그렇게 큰 거야?"
"하하하. 이것 참 쑥스럽군! 하긴, 내가 덩치가 좋긴 좋다!"
"나는 사랑이라고 해. 너도 이름이 있어?"
"나의 이름은 사월이다. 반갑다."
"우와! 이름 되게 멋지다!"
어른 멍멍이 사월이는 내 말에 기분이 좋은 듯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동시에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댔다.
"사월아, 내가 너 기분을 상하게 했어? 왜 그렇게 꼬리를 흔드는 거야?"
"아기 고양이. 너는 아직 배울 것이 많구나. 자고로 우리 개들은 고양이와 달리 꼬리를 흔들면 흔들수록 기분이 좋은 것이다."
"우와. 너희도 꼬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구나? 너는 어른 멍멍이라서 아는 것이 많구나! 너 정말 똑똑하다!"
어른 멍멍이 사월이는 나의 칭찬에 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하얀 꼬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었다.
사월이가 알려주는 이야기는 참 재밌었다. 이 집의 인간들에 대한 소개도 해주었고, 이 집에 나랑 같은 고양이가 더 있다는 정보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상자를 주워가는 할머니와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사월이는 어른 멍멍이라서 그런지 아는 것이 참 많았다. 그래서 사월이는 언니가 어디로 사냥을 하러 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 사냥을 하러 갔는지 알기만 하면, 내가 가서 도와줄 수 있다. 아직 내가 작긴 하지만, 쥐돌이를 사냥해온 기술들을 쓴다면 언니보다 더 사냥을 잘할지도 모른다.
"사월아! 너 혹시 언니를 아니? 매일 나한테 맘마를 주던 인간이야. 머리에 긴 털이 있고..."
"아, 내 주인님의 딸을 말하는 거구나?"
"딸?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는 그 인간을 언니라고 불러."
"아마 같은 인간을 말하는 것이 맞을 거다. 그런데 주인님 딸은 며칠 전에 서울이라는 곳으로 가버렸다. 인간들은 돈이란 걸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버리다니? 돈이라니?"
"음... 그러니까 인간은 먹고 살려면 돈을 사냥해야하고, 그래서 떠났다는 것이다. 한참 후에 돌아오겠지."
언니가 나를 떠났다. 나의 첫 괜찮은 인간이 갑자기 나를 떠나버렸다. 역시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인간은 위험할 수 있으니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엄마 말을 잊고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한 쥐돌이 공략법을 무려 다섯 가지나 준비해두었다. 이제 나는 숨어서 공격도 할 수 있고, 뒷발로 팡팡차기도 할 수 있다. 이빨로 물고 흔들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언니가 멀리 사냥을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