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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08. 2020

당신, 고양이 키우지 마세요.

솜털 같은 게 되게 무겁네

집사


 "엄마, 사랑이는 잘 있어요? 좀 많이 들여다보고 놀아주고.  네, 저녁 잘 챙겨 먹을게요! 응응, 알겠어요. 끊어요~"


 퇴근하는 지하철. 오늘도 사랑이 안부를 물으며 엄마와의 통화를 마쳤다. 서울에 올라온지 보름쯤 되어가고 있다.

 사랑이를 경주에 두고 서울로 올라가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시간이 정신없이 가버렸다.

 하지만 바쁜 하루 중에서도 유독 사랑이가 생각나는 시간이 있다. 사랑이에게 아침밥을 주곤 했던 어스름한 아침시간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이 딱 그렇다.


 사랑이가 계속 생각나고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되지만, 섣불리 입양을 결정하지 못하고 골머리만 앓고 있는 요즘이다. 매일 부모님께 사랑이의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사랑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이런 나의 걱정과 고민을 풀어놓으면 비슷한 대답들이 돌아온다.

 "고양이는 그래도 개보다는 혼자 잘 있지 않아요?"

 "혼자 고양이 케어할 수 있겠어?"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는  이유가 뭐? 그냥 같이 살아."


 저렇게 조언을 해주는 건 차라리 쉬웠다. 내가 '고양이와의 동거'를 고민만 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우선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자 솔직한 이유는 '경제적 문제'이다. 나는 월세살이를 하는 원룸 자취생이다. 대한민국의 '특출 날 것 없는' 청년이랄까.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는 볼 수 없는 내가 언젠가 사랑이에게 쓰는 돈을 걱정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서글프지만 그때를 상상하니 나 자신이 너무 비루하기까지 했다. 아아, 이런 것이 바로 가장의 무게일까.

 하지만 이 경제적인 이유는 가장 적은 부분을 차지했다. 사실 경제적인 씀씀이는 나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 이유는 다소 내 의지가 반영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바로 시간적 여유 부족이라는 점.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 중에 하나가 '고양이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라는 점이다. 고양이도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동물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잘못된 상식 때문에 고양이는 '조용한 학대'를 받고, 그로 인한 고통이 신체적인 질병으로 많이 발현된다고 한다.

 좁은 집에서 나와 같이 사는 게 사랑이에게 행복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지갑도 얇은 탓에, 친구로 지낼 고양이를 더 입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내가 출근하는 평일에는 사랑이가 얼마나 심심할까. 분리불안이 오지는 않을까? 우울증에 걸리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걱정이 줄줄이 이어졌다.


 세 번째 이유는 '실패의 경험'이다. 나는 2017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친구와 월세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살았었다. 막 사회생활을 했던 2017년의 나와 친구는 큰 고민도 하지 않고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었다. 고양이에 대한 공부나 지식도 없이, 별다른 고민이나 준비도 없이 입양한 고양이었다. 안일한 마음으로 고양이를 입양한 결과,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나의 부모님께 고양이를 맡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 고양이가 현재 엄마와 살고 있는 러시안블루, 우루이다. 지금 우루가 엄마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우루를 보면 철없던 예전의 내가 떠오르곤 한다. 다행히 엄마가 우루를 품어주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정말 두고두고 우루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갔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철없는 그때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나 좋자고 무책임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사랑이의 죽음이 너무 두렵다는 점이다. 고양이의 삶은 인간보다 훨씬 짧고 빠르다. 그러기에 나는 언젠가 사랑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명태의 죽음을 단단하게 마주한 엄마처럼 될 자신이 없었다. 가장 머나먼 이야기지만 가장 두려운 이유이다.


 나는 머릿속의 고민들을 하나하나 공책에 끄적여보았다. 아기 고양이, 돈, 사랑이, 나의 시간, 회사, 집사로서의 삶, 사랑이가 나이들어 죽었을 때의 내 심정, 당장의 변화.  

 떠오르는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가다 보니 그 끝은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저런 고민들의 근본적인 이유가 결국 나의 이기심에서 뻗어 나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이와 삶을 함께 하게 된다면, 나는 혼자 살면서 자유로웠던 많은 부분들을 비워내고, 그 자리를 책임감으로 채워가야 할 것이고, 그 변화가 새삼 아쉬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무게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랑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매일같이 자라나니,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부딪히면서 마음속과 머릿속에 잡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 진짜 나는 욕심쟁이구나. 이것도 포기하기싫고, 저것도 포기하기 싫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사실 마음은 이미 어느 정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단지 이 고민들을 충분히 하여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내리고 싶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전이라면, 이 정도 고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없이 입양하려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반려동물과 함께 할 자격이 없다.


 솜털 같은 사랑이가 나를 이렇게 무겁게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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