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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29. 2020

나의 엄마 고양이

나는 잘 살고 있어요. 엄마도 잘 지내고 있어요?

고양이


 오늘 아침은 엄마 생각이 났다.



  이름이 없다. 물론 우리 언니오빠들도 이름이 없다. 엄마우리들을 부를 때 엄마만의 소리를 내곤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를 하나하나 다르게 불러주셨다.

 엄마는 우리가 배고플 때 마다  따스한 맘마를 주시면서 늘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우리 고양이들이 품격 있는 동물이라는 것도 알려주셨고, 우리는 소리 없이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엄청난 비밀도 속삭여주셨다. 아직은 우리가 너무 어려서 '애옹'거리는 소리밖에 못 내지만, 우리가 조금 더 자라면 꼬리와 눈동자로, 그리고 귀의 움직임만으로도 말이 통한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엄마가 주는 맘마를 먹으면서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고양이는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소리 없이 대화를? 엄청난 능력이잖아? 나중에 꼭 해봐야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아가들, 오늘은 조금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야."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엄마의 따뜻한 털 속에서 맘마를 먹고 있을 때였다.


 "저기 두 다리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이 보이니?"

 "잘 안 보이지만, 길고 움직이는 것은 보여요. 저번에 엄마가 알려준 나무인가요?"

 

 내가 잽싸게 대답을 했다. 엄마는 듣기 좋은 갸르릉 소리를 내며 날 칭찬하듯 핥아주셨다.


 "우리 아가는 엄마가 알려준 것을 아주 똑똑하게 기억을 잘하는구나. 하지만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단다. 저 동물은 나무처럼 길지만 우리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우리와 달리 다리가 두 개뿐이란다. 그리고 '소리'를 내기도 하지. 우리를 아주 좋아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아주 미워하기도 한단다."

 

 엄마의 말은 굉장히 어려웠다. 우리를 좋아하는데 우리를 싫어한다?


 "우리를 왜 싫어해요? 우리는 품격 있고 똑똑한걸요?"

 첫째 언니가 갸우뚱하며 질문을 했다. 나도 궁금했다. 우리를 왜 싫어하지? 우리는 나쁜 동물이 아닌데. 언니의 질문에 우리는 모두 애옹 거리기 시작했다.

 

 "맞아. 우리가 뭐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우리대로 사는데 왜 우릴 미워해요?"

 "그럼 우리도 미워할래요. 저건 나쁜 동물이야..."


 엄마는 부드럽게 우리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저것은 '인간'이라고 하는 동물이란다. 우리처럼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어.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우리처럼 배가 고프면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하지. 우리와 아주 비슷하지? 이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으로 말이지."


 우리의 털을 구석구석 핥아주시며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엄마도 인간들을 만난 기억이 많단다.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를 위해 따뜻한 쉼터와 맛있는 밥, 그리고 신선한 물을 주곤 한단다. 음,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곤 해. 처음에는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들었지만 말이야. 엄마도 그 덕에 인간의 말을 배우기도 했단다."

 

 엄마의 표정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엄마가 만났던 좋은 인간은 엄마에게 소중한 기억인 것 같았다.

 

 "우와! 엄마, 그럼 인간은 좋은 동물이에요?"



 "좋은 인간도 많이 있지. 하지만 간혹 가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야말로 곤혹스럽기 그지없어. 우리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우리를 무섭게 쳐다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단다. 심지어 우리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무시무시한 것을 던지기도 하지."

 

 그러면서 엄마는 우리에게 뒷 발을 보여주셨다. 담장을 걷고 있던 어느 날, 엄마에게 어떤 인간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놀란 엄마는 후다닥 도망갔다. 하지만 그 인간이 엄마에게 돌을 던졌고, 그 돌은 엄마의 뒤꿈치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때부터 엄마는 절뚝거리며 살았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엄마의 다친 뒷 발을 보니 화가 났다. 우리 모두는 엄마를 아프게 한 그 인간이 미웠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위험하기만 할 것 같은 인간, 이 인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엄마,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간과 잘 지내야 하나요? 아니면 피해야 하나요?"

 "아가, 좋은 인간은 한없이 고마운 존재이고, 또 좋은 인간도 아주 많이 있단다. 하지만 아가, 우리는 인간에게 섣불리 다가가서는 안된단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우리가 먼저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단다. 만약 그들이 좋은 인간이라면 우리를 기다려줄 거야. 그리고 우리가 다가갈 때까지 다시 찾아와 줄 거란다."


 그리고 이날의 대화는 엄마와 우리가 나눈 마지막 이야기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다시 다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졸고 있던 우리를 급히 깨우더니 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얘들아, 우리 집에 문화재 복원 공사를 하러 사람들과 큰 기계들이 많이 오고 있어. 얼른 이웃집 할머니 댁 지붕으로 피해야 한단다. 서두르렴. 어서!"

 나는 '문화재 복원 공사'가 뭔지 몰랐지만, 일단 언니 오빠를 따라 움직였다. 숨이 가빴다. 아직 걷는 것조차 못하는 동생들은 엄마가 목덜미를 물고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뒤쳐지자 엄마가 코로 나를 밀어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쾅쾅'하는 큰 소리가 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낯선 곳에 나만 혼자 남겨져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엄마와 언니 오빠를 기다리며 며칠을 굶주렸다.


 그러다 한 인간의 집에서 깨어났고, 요즘은 이 인간이 내게 맘마를 주고 있다. 엄마가 보고 싶지만, 나를 살려준 이 인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 인간은 엄마가 말한 '좋은 인간'인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엄마의 말씀대로 주의하고 경계했다. 하지만 인간은 배가 고픈 나를 위해 계속 맘마를 주었다. 물론 엄마의 맘마처럼 맛있지 않았지만. 그리고 내가 싫다고 말하면 날 만지지 않았다. 엄마처럼 내 모든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나의 응가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 정도면 엄마도 좋은 인간이라고 했을 거야.'

 

 그리고 저 인간은 요즘 들어 나를 보고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 언니 왔어! 맘마 먹자~"

  "사랑~ 언니랑 같이 장난감 가지고 놀래?"

  "사랑이~ 사랑이~ "


 저게 인간들끼리 부른다는 '이름'인 것 같았다. 나는 인간에게 여러 번 말해주었다. 나를 굳이 이름으로 안 불러도 너의 목소리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내 말은 못 알아듣지만, 내 묘생에 생긴 첫 인간이 좋은 인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보고 싶고 언니 오빠가 그립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튼튼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름이 '언니'인 것 같은 저 인간이 지어준 '사랑'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든다.


 내게 이름이 생겼다.


 내게 좋은 사람이 생겼다. 엄마를 만나는 날, 꼭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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