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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01. 2019

하나만 낳고 싶어, 나를 위해서

둘째를 선택하지 않은 정직한 이유

밤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누웠다. 지난번에 꺼낸 둘째 이야기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한번 아내를 설득해보리라 생각했다.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을 안고 어둠 속에다 슬며시 말을 꺼냈다.

“자기야, 우리 둘째 말이야...”
“둘째 뭐? 그 얘기 끝난 거 아니야? 난 둘째 낳을 거라고.”

아내는 퉁명스러웠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자녀계획은 나와 가족의 삶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나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내 의지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애는 자기 혼자 낳냐? 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이어야 하잖아. 근데 나는 둘째를 생각하면 자꾸 가슴이 답답한데 어떡하라고!”

아내도 나의 반응에 놀랐는지 새까만 정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정지된 시간이 흐르며 방안의 사물들이 밤의 어둠을 뚫고 저마다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덮으려 해도 덮어지지 않는 마음처럼.

“나도 하나만 낳겠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어. 자기도 알잖아. 근데 정말 안 되겠어. 솔직히 자기 때문도 아니고 첫째 때문도 아니고 순전히 나 때문이야. 둘째를 낳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겁이나. 나를 위해서 하나만 낳고 싶어.”

처음 둘째를 가지지 말자고 했을 때는 아내에게 그 이유를 돌렸다. 아내는 나의 심각한 허리디스크 때문에 힘든 육아와 집안일들을 혼자 견뎌내야 했다. 둘째가 생기면 그 짐이 훨씬 더 무거워질 터였다. 그래서 둘째를 포기하는 일이 아내를 위함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내의 저항은 완강했다.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내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 아내를 위한 선택일까? 아내가 이토록 둘째를 원하는데 그렇다면 아내를 위해 내가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용기는커녕 걱정과 염려만 커질 뿐이었다.

“자기가 아무리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한다 해도 자기도 결국 사람이잖아. 수시로 힘들고 지칠 텐데 그럼 당연히 거들어야 하는 손길이 필요하겠지. 하나 키울 때도 혼자서는 힘들 때가 많은데 둘이면 어떻겠어? 밥도 둘을 먹여야 되고 양치도 두 명, 샤워도 두 명, 유모차도 두 개, 카시트도 두 개... 나도 몸 쓰는 일이 잦을 게 분명하다고. 허리 아프다고 누워만 있는 내 모습을 자기가 참을 수 있을 거 같아?”

사실은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두려웠다. 몸이 아프다고 당장 우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배고픈 아이를 굶길 순 없는 일이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 앞에 충실하게 된다. 장애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미래’는 ‘살아내야 하는 현재’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불안한 미래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다가오지만, 지금 당장 먹여야 할 두 아이의 끼니와 치워야 할 배변과 눕혀야 할 취침시간은 쉬지 않고 꾸역꾸역 찾아온다.

“둘째를 낳으면 분명히 지금보다 몸이 더 힘들어질 거야. 내 허리에도 무리가 갈 테고. 난 그게 싫고 무서워. 내 몸과 건강을 지키고 싶어. 나를 위해서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만에 하나라도 내 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 둘째가 있으면 자기 혼자 네 식구를 책임져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 나도 자기 건강이 제일 중요해. 둘째를 가지지 않는 게 자기에게 좋다는 것도 맞아. 근데 포기하기가 너무 어려워. 난 이런 상황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고...”

“정말 미안해... 나도 상상 못 했어.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하나만 낳는 게 좋은 선택 같아. 둘째가 없어도 우리 가족 지금처럼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아내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느꼈다. 둘째가 우리 가정에, 그리고 나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을 아내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하나만 낳을 자유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어릴 적부터 가졌던 소망을 내려놓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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