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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15. 2019

외동아이, 혼자 놀게 두세요

아이도 부모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토요일 오전 8시.

부스럭거리며 잠에서 깬 나는 오늘이 주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안도감에 젖는다. 밤새 에너지를 채워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면 방 문 너머에서 아들 녀석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녀석, 또 나타났군! 나의 공격을 받아라!! 슉슉 ”
“아악! 제발 살려줘!”

아들은 블록 장난감으로 우주선을 만들어 1인 2역을 하며 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구를 지키는 용사들에게 한가한 주말은 없다. 아이는 이른 아침 지구로  쳐들어온 적들을 처절하게 응징하는 중이었다.

‘얘는 또 언제 일어난 거야....’

아이는 주말이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슬그머니 아이의 노는 모습을 훔쳐봤다. 텅 빈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잣말을 하며 놀고 있는 아이가 왠지 안쓰럽다.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둘째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난 아이가 혼자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 미안함에 눈길이 떼어지지 않는다. 같이 놀아주면 아이가 덜 외로울 텐데, 더 즐거울 텐데 싶다. 하지만 직장인의 소중한 주말 아침을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마음도 만만치 않다. 잠을 더 자든, 침대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든, 책을 읽든... 긴장했던 내 몸과 마음을 주말만은 편안히 풀어놓고 싶다.

주말 아침마다 이 두 가지 마음이 내 안에서 격렬히 싸운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완전한 승리는 없다.

아이를 위해 놀아줘야지 마음먹어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지루해지고 지친다. 또 아이가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면 짜증이 나고 혼자 놀라고 내버려 두기도 한다. 그럼 아이도 ‘이제 아빠랑 안 놀 거야!’ 으름장을 놓는데, 철없는 아빠는 ‘그럼 나는 좋지!’ 하고 아이를 골린다. 아름다운 육아의 모습은 아니다.

다른 선택도 마찬가지다. 아이 몰래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SNS나 게임을 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다. 그러면 진짜 죄책감이 몰려온다.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이 쉬지 못한다. 아이와 나, 모두가 즐겁게 쉴 수 있는 주말 아침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날 내가 이런 고민들을 아내에게 꺼내 놓았더니 아내는 너무나 쿨하게 답한다.

“애는 혼자 잘 노는데 자기 마음 불편하니까 그런거잖아. 혼자 놀게 두고 자기 하고 싶은 거 해.”


실제로 아내는 아이를 혼자 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가끔은 너무한다 싶을 때도 있지만, 아내가 육아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혼자 노는 게 안쓰럽잖아”


“그건 자기 생각이고... 맨날 어린이집에서 애들 사이에 치이다가 집에서 혼자 노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아? 그리고 혼자 노는 연습도 해야지. 언제까지 같이 놀아줄 것도 아닌데.”


정말이다. 혼자 노는 시간이 쓸쓸하거나 외롭다는 건 나의 편견일 수 있다. 나도 어릴 때 혼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 시간이 항상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주변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나만의 생각을 펼칠 수도 있었다. 책을 손에 잡은 것도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면 내면의 몰입은 불가능하다.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고유한 내면세계를  만들어간다.

오히려 아이의 혼자 있는 시간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부모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에너지는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혼자 노는 것이 잘못되었고 불쌍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이는 행복할 수 없다. 끊임없이 부모를 찾거나 친구를 찾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줘야 한다.

어떤 날은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심심해’ 라며 엄마 아빠 곁에 어슬렁 거리며 치대기 일쑤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뭐라도 같이 하려고 하지만 금세 지쳐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안쓰럽다는 듯이 말한다.

“적당히 해. 힘은 힘대로 쓰고 결국 짜증만 내고... 그게 뭐냐. 쉴 때 쉬고 놀아줄 때 제대로 놀아주든지.”

그래서 요즘은 아이가 심심하다고 노래를 불러도 쉽게 동요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으면 아이에게 분명히 이야기해준다.

“아빠 지금 책 읽고 싶어. 한 시간만 이따가 같이 놀자. 놀이터 나가서 노는 거야. 알았지?”

아이도 처음엔 싫은 티를 내지만 금세 혼자 놀면서 아빠를 기다린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함께 놀이터 가서 신나게 놀면 아이도 나도 훨씬 즐겁고 만족도가 높다.

이제는 혼자 노는 아이에게 너무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가족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 가족의 행복이 준비되기 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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