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Oct 18. 2019

외동아이가 덜 외롭다

외로움의 본질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인의 외로움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을 묻는 질문에 아래와 같은 답변들이 나왔다.

1. 혼자 있을 때 (41.6%)
2. 속 얘기/힘든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을 때(33.6%)
3.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을 때(29.2%)
4. 만날 사람이 없을 때(26.5%)
5.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을 때(17.7%)
6. SNS에서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볼 때(9.6%)

(출처: 사회적 관계와 소통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조사, 닐슨코리아, 2017)

가장 많은 답변은 ‘혼자 있을 때’ 이지만, 혼자 있는 상황 자체가 외로움의 원인은 아니다. 퇴근 후 만끽하는 맥주 한 잔의 혼술 시간, 육아 전쟁을 치른 뒤 찾아온 커피 한 잔과 혼자만의 시간은 꿀맛 같을 테니까.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진짜 이유는 그다음부터 나온다.


속 얘기할 사람, 도움을 청할 사람, 나에게 관심 가져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이 성큼 내 마음에 들어선다.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 그런 느낌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사교모임 속에서도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은 주저 없이 나를 끌어안는다.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외동이기 때문에, 형제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가 외로워한다면 그것은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신호이지 둘째를 낳아달라는 말이 아니다.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부모, 도움을 쉽게 청할 수 있는 부모, 늘 나에게 관심 가져 주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는 외롭지 않다.

외로움의 본질이 사랑의 결핍이라고 본다면 부모 의존도가 높은 어린아이들의 경우, 형제가 많은 아이보다 외동아이가 덜 외롭다. 외동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오롯이 독차지 하지만,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사랑에 대한 경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가 가지는 경계의 태도는 경쟁자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다.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상황들 속에서도 엄마 아빠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판단하려 한다. 하지만 외동아이는 부모에게 이야기할 때도, 도움을 청할 때도 경쟁할 필요가 없다. 세상 모든 아이들 가운데 나만 편애하는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확신이 더 크다.

하루는 아내에게 외동아이의 외로움에 대한 내 생각을 나누었다.

“아이들도 혼자라서 외로운 건 아닐 거야.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외로운 거지. 우리 애도 외동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많이 사랑해주면 돼.”

외동딸로 태어나 자랐던 아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무언가 깨달음이 온 것처럼 천천히 대답했다.

“아... 정말 맞는 얘기야.”

그리고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는데, 항상 밤늦은 시간에 들어오셨어. 난 겨우 10살 남짓된 초등학생이었으니까 혼자서 TV 보고, 밥 챙겨 먹고, 잠드는 게 너무 싫었지. 가끔 잠들기 전에 엄마 얼굴을 본 적도 있지만, 엄마는 늘 녹화해둔 드라마만 보고 나랑 얘기는 안 하셨어. '오늘 하루는 어땠어?' '학교에서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 하고 물어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더 외롭게 느꼈던 것 같아.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다음날 학교 갈 때까지 나의 안부를 묻거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형제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내 곁에 있었으면 했던 것 같아."


아내는 지금까지 자신이 외동이기 때문에 외로웠고, 그래서 형제을 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가 가진 외로움의 진짜 정체는 그 결이 달랐다. 


“부모님은 당신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셨지만, 나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했어.”


아내는 또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채미(나의 조카)는 외동딸이면서도, 형제를 원한 적이 없다고 했어. 난 그 말을 듣고 많이 놀랐는데 이제 이해가 돼. 채미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형제나 친구처럼 친밀했기 때문이야. 사소한 것까지도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거야. 그러니까 별로 외롭지도 않았고 형제의 필요를 못 느낀 거지.”

어려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것처럼 아내의 표정은 자신에 찼다. 나도 수긍이 갔다. 조카는 부모님과 늘 대화를 많이 했고 여행도 자주 다녔다. 정말 친구 같은 관계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동아이을 키우는 일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막연히 혼자라서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기우(杞憂)였다. 부모가 할 일은  둘째를 가지거나, 놀이터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전부다. 아이가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존재로 곁에 있으면 된다.

과연 우리 아이는 나와 아내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내가 알지 못한 외로움이 있지는 않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어느 때는 친구처럼 한 없이 좋은 아빠이다가도, 어느 때는 말 한마디에도 짜증 충만한 아빠인 내 모습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 아이를 재울 때 꼭 이야기해줘야겠다.


아이야, 아빠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너를 제일 사랑한단다!
이전 09화 외동아이, 혼자 놀게 두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