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여행을 위해 일 년을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의 생일이 다가온다면 어떤 선물이 좋을까? 그 사람이 원하는 선물을 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대개는 지갑, 가방, 옷, 액세서리 등 패션에 관계되는 선물을 하게 된다. 고르기도 쉽고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독일 사람들의 선물 형태는 조금 다르다. 내가 아는 독일인들 중 액세서리를 선물로 주는 친구는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것은 '경험' 할 수 있는 선물이었다.
남자친구가 늘 해보고 싶었던 경비행기 운전을 해볼 수 있는 체험권
여자친구가 가보고 싶어했던 특별한 장소에 갈 수 있는 여행 예약
집에서는 요리하기 힘든 나라의 음식을 요리해볼 수 있는 쿠킹클래스 수강권 등
독일인들은 주로 어떤 것들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것들을 선물한다. 여기에 손으로 쓴 편지와 꽃을 곁들이면 완벽한 선물이 된다.
소유보다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을 반기는 사회
물론 아주 부유한 계층들은 어느 나라를 가던 비슷한 생활을 한다. 명품 옷, 비싼 차, 가격을 가늠할 수 없는 시계 등.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독일에도 명품거리가 있고 부유한 사람들의 차림새로 보아 값비싼 물건들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 같다.
하지만 보통의 독일 사람들은 경험 - 언어를 배우고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시도하는 것- 을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00 부서 사람이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000 가문 사람이래"
독일회사에서도 이런 가십이 돈다.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패션 쪽은 많다고 하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는 보수적인 독일 기업이라.. 등산배낭을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00 부서에 새로 온 사람이 00 나라 출신이래" 라던가 "00이 이번 휴가로 페루를 다녀왔대"라는 소식이다. 본인들이 가보지 못한 곳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굉장히 궁금해한다.
여행하기 좋은 환경, 높은 세율로 인해 가처분소득이 낮은 사회, 쇼핑이 불편한 사회
여행을 자주 갈 수 있는 것은 인접한 국가들이 많고 한국과 비교해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일수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징검다리 휴가 때는 기차를 타고 옆 나라로 여행 가기도 했고, 저가 항공권으로 왕복 6만 원에 스페인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건을 사는 소비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는 40~50% 가까이 육박하는 세금 때문에 실질 가처분소득이 낮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비슷한 수준의 세후 소득을 한국과 독일에서 받는다고 한다면 독일에서 느끼는 그 돈의 가치는 좀 더 낮다. 피할 수 없는 월세와 외식비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과 비슷하게 소비를 하려면 좀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또 상점들은 오후 8시면 다 문을 닫고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아 쇼핑하기에 불편하다. 인터넷 쇼핑도 있지만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국가와 비교했을 때 쇼핑의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나도 처음에는 체험권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조금 갸우뚱했었는데 막상 요리수업, 와인 클래스 수강 등을 해보니 생각보다 재밌었다. 또 나의 취향을 고려해 여러 대안들 중 한 가지를 선물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마음이 고맙게 여겨졌다. 낯설다 생각했던 문화였지만 독일의 이런 점이 나와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독일로 건너갔을 때 '경험'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이 성장했다. 예전처럼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나에게 어떤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한동안은 경험과 체험을 통한 성장을 조금 더 해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