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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Oct 24. 2020

겨울소년과 여름소녀, 그리고 병 속의 편지-8

4. 저는 도우러 가고 싶어요 -2

“해나 너도 참....... 누가 너를 막겠니?”


할머니는 해나의 고집이 꺾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집이 센 해나는 어려서부터 마을에서 황소고집으로 유명했다.


해나가 한 번 하기로 정한 것은 결코 바꾸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쉽지 않을 거야.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드셨지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이 반대할 게 분명해. 아무리 가고 싶다고 해도 나 혼자서는 다 준비할 수 없어. 어떻게 하지?’


해나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보고 할머니는 해나가 하는 고민이 무언지 눈치챘다.


“일단 네 엄마 아빠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보자꾸나. 여럿의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잖니? 어차피 거기까지 가려면 배도 필요할 테고 말이야.”


할머니는 해나와 함께 가족들에게 갔다.


“해나, 지금까지 어디 있었니? 내내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


집으로 돌아오자 해나의 어머니는 해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해나가 늘 바닷가에 앉아있는 걸 알았지만 오늘은 할머니와 아지트에 있느라 어머니가 바닷가를 내다보았을 때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해나는 마음이 급해서 한 시도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말을 꺼내기로 했다. 빨리 떠나기 위해서는 빨리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무슨 일이니?”


다들 해나의 말을 듣고자 모여 앉은 후, 해나의 할아버지께서는 해나에게 물어보셨다.


“저 겨울나라에 가려고 해요.”


해나는 결의에 찬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겨울나라? 거기는 갑자기 왜?”


어머니는 과일을 깎으시며 해나에게 대수롭지 않게 물어보셨다.


“제 친구가 있는데요, 지금 위기에 처해서 제가 가서 도와줘야 해요!”


해나는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를 도우러 가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말했다.


“네가 거기에 친구가 있다고? 어떻게?”


어머니는 내내 혼자 있던 해나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겨울나라에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에 놀라며 물으셨다.


“우리가 구해준 돌고래 ‘돌리’가 ‘바론’이 쓴 편지를 전해줬어요.”


해나의 말을 듣자 어머니는 과일을 깎던 것을 멈추고 해나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듯 물어보셨다.


“바론? 네 친구 이름이 바론이니?”


친구를 도우러 가려면 한 시가 급한데 어머니께서 해나에게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고 있는 게 답답해서 해나는 숨도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이야기했다.


“네. 바론은 어둠의 마왕한테 어머니가 붙잡혀 가셔서 구하러 간대요. 거기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아프거나 붙잡혀 갔고, 걔네 아버지도 약을 구하러 배를 타고 나가셔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제가 가서 도와줘야 해요!”


해나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해나의 옆에 서 있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하는구나. 나도 아까 물어봤는데, 해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친구인가 봐.”


할머니는 이제 해나를 설득하기 포기했다는 듯이 속 편하게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해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자 해나의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해나가 말하는 게 사실이고 진심을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나, 너한테 그런 친구가 있는 줄 몰랐구나. 좋은 친구가 있다니 다행이야.”


아버지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해나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네, 아빠.”


“그런데 해나야, 겨울나라는 아주, 아주 먼 곳이란다. 여기서는 정말 멀지. 나도 멀다는 것 외에는 거기를 가본 적도 없고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단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거기를 가겠다는 거니?”


해나의 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해나에게 말씀하셨다. 해나는 아버지가 물어보는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도와주러 가지 않으면 거기 사람들은 어둠의 마왕한테 잡혀가서 죽는단 말이에요!”


이제 겨우 사귄 유일한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해나는 흥분해서 큰 목소리를 냈다.


“거기 어른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데 어른도 아닌 네가 거길 가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구해준다는 거니?”


해나의 마음은 알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겨울나라에 가본 적도 없는 데다 어둠의 마왕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해나가 가서 도와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가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할머니의 할머니도 겨울나라 사람들을 구하셨잖아요! 저라고 왜 못해요?”


어른들은 해나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해나의 눈은 이미 해나는 어른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갈 것처럼 의지가 굳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히 턱의 수염을 매만지셨다.


“얘야, 이건 해나의 말이 맞는 것 같구나. 해나 할머니의 할머니도 먼바다로 나가서 겨울나라를 구하고 돌아오셨었지. 덕분에 겨울나라뿐만 아니라 여름나라도 지금까지 이렇게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거란다.”


그때까지 조용히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입을 여시며 말씀하셨다.


“네? 그건 그냥 꾸며낸 이야기 아니었어요?”


해나의 부모님은 놀라서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전설은 사실이란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 누군가가 위험에 처한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런 위험이 처하게 된단다.”


할아버지는 턱에 난 수염을 매만지며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해나는 할아버지께서 자신을 지지해주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모두가 반대하기만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자기편이 있었다. 자기가 하려는 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꼭 바보 같은 짓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겨울나라와 어둠의 마왕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잖아요. 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도와주러 가요?”


해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반대하며 흥분해서 말했다.


“몰라도 가볼 수도 있죠!”


“해나 너는 배도 없고 준비된 것도 없잖아.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가겠다는 거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서 해나는 할 말을 잃었다.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해나는 풀이 죽어 조용히 아지트로 가서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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