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ka Oct 24. 2020

겨울소년과 여름소녀, 그리고 병 속의 편지-9

5.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해나는 부모님의 반대로 겨울나라로 떠나는 게 좌절되자, 옛날로 돌아가 매일 멍하니 바다를 혼자 바라보고 있거나 아지트에 처박혀 있었다.


혼자 그러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외롭고 슬퍼 보이는지, 보는 사람이 다 괴로울 정도였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가만히 그러고 있기가 힘들었는지 나무를 잘라서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들어 보는 터라 요령도 솜씨도 없는 손이 고생이었다. 해나의 손은 나무 가시에 찔리고 톱에 베이고 다쳐서 상처투성이였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만든 뗏목은 금방 풀어지고 망가졌다.


“어휴, 또 실패야!”


“그래서 어느 세월에 배를 만들겠어?”


화가 나서 나뭇조각들을 바다에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고 해나의 아버지가 다가와 말했다.


“아빠!”


“요새는 돌고래들이 안 와서 바다에 멀리 못 나가서 심심한 모양이구나.”


해나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돌고래와 편지로 생기 넘치던 해나가 기운이 없으니 지켜보는 가족들도 마음이 안 좋았다.


“우리 집 귀염둥이가 이렇게 기운이 빠져 있으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안 되겠다. 따라와!”


동굴에 들어가자 아빠는 커다란 천을 걷어냈다. 거기에는 사람이 여럿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커다란 카누가 있었다.


“우와, 이거 아빠가 만드신 거예요?”


해나는 그것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네 생일 선물로 만들었지.”


“아빠!”


“아직 네 생일은 좀 남았지만, 네가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속상해서 먼저 주는 거야. 위험한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지금 주마.”


“약속할게요. 감사해요, 아빠!”


아버지의 선물에 감동받은 해나는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해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바다로 가지고 나와 카누를 타기 시작했다.


며칠을 하루 종일 카누만 타더니 금방 카누에 익숙해졌다.


해나는 배가 생기니 또다시 겨울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위험한 짓은 하지 않기로 아빠랑 약속했어.’


카누를 타고 근방만 돌아다니니 그것도 곧 지루해졌다. 해나가 카누를 세워놓고 시무룩하게 해변에 앉아 있자 할머니가 다가와 앉으셨다.


“아직도 겨울나라에 가고 싶은 거니?”


“바론이 걱정돼요. 답장을 보냈는데 여전히 답도 없고...”


“나도 네 나이 때 모험을 떠나고 싶었단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께 받은 털옷과 배를 소중하게 간직했지. 언젠가는 그것들을 가지고 할머니처럼 겨울나라에 가보고 싶었어.”


“근데 왜 안 가셨어요?”


“혼자 떠나는 게 무서웠어. 망설이다가 네 할아버지를 만났고, 네 할아버지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해서 우리는 결혼하고 세계여행을 하려 했어.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서 아이가 생겼지.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힘드니까 결국 여기에 정착하게 됐어. 언젠가 기회가 생길 줄 알았지만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더구나. 이제는 내 몸 가누기도 힘들어서 멀리 가는 건 엄두도 안 나. 가족들도 좋았지만 나는 평생 떠나보지 못한 게 후회되었단다. 네 나이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모험을 떠날 거야.”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할아버지까지 와서 옆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젊음은 아주 순식간이지. 금방 지나간단다.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해. 뭐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란다. 기회란 녀석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단다. 자주 찾아오지도 않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지 않으면 안 한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된단다. 이제 네겐 배도 생겼는데 뭘 망설이니?”


“하지만 아빠와 위험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걸요?”


“해나야, 위험을 겪지 않고는 배우지도 않고 얻어지는 것도 없단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고통을 겪어야 해. 그래서 성장통이라고 하지. 네가 여기에 가만히 있는 다면 뭘 배울 수 있겠니? 지금의 삶과 다를 게 없을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넌 다른 사람들과 다르잖니. 그걸 견딜 수 있겠니?”


“할까 하지 말까 고민될 때는 해보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아.”


할아버지는 쐐기를 박으셨다.


“저, 그럼 갈래요. 근데 엄마 아빠는 허락 안 해주실 것 같은데, 두 분이 잘 말해주실 수 있어요?”


“걱정 마라, 우리가 허락했다고 하마.”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고조할머니가 겨울나라에 갔을 때 거기서 입었던 털옷을 꺼내어 주셨다. 옷은 옛날에 입었던 것이라고 했지만 관리를 잘해두어서 얼마 안 입은 옷처럼 새 옷 같았다.


“이것도 아직 쓸 만할 거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마련해 두었던 지도와 나침반도 꺼내 주셨다.


“와아, 감사합니다!”


해나는 털옷과 지도, 나침반을 받고 신나서 소리쳤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실컷 부추겨 놓고 이제와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너희 엄마 아빠 몰래 너 혼자 겨울나라까지 가라고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구나.”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러자 해나가 걱정 없다는 듯 해맑게 말했다.


“저도 혼자가 아니에요! 돌리랑 다른 돌고래들이 저를 데려다 줄 거예요!”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카누까지 생겨서 든든한 해나는 이제 거칠 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너는 비록 우리보다 어리지만 돌고래들과 수영도 하고 바다에 익숙하니. 그리고 돌고래들과 함께라면 문제없을 거다. 돌고래들이 우리 해나를 보살펴줄 거야.”


할아버지도 해나의 어깨를 안으며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해나를 그녀의 부모님만큼이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었기에 해나가 위험에 처하게 될 일이라면 극구 말렸을 것이다.


그날 밤 해나의 집에서는 고조할머니의 겨울나라 여행기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해나에게 겨울나라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주셨다.


다음 날 해나는 돌고래들에게 가서 자신을 겨울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카누를 탈 테니까 내가 맞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줘.”


돌고래들은 알겠다는 듯 물장구를 치며 기분 좋게 소리 냈다. 돌고래들은 둘이 친구가 되기 전 바론의 편지를 전해줄 때부터 이미 둘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외로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해나가 바론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돌고래들은 언젠가 둘이 만나게 되리라고 예감했다.


그래서인지 해나가 가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놀라지 않고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전 08화 겨울소년과 여름소녀, 그리고 병 속의 편지-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