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마음먹기 나름
하하하 호호호
까르르륵 까르르륵
여기는 재활병원 보호자 대기실이다. 무엇이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박장대소가 연일 이어진다. 특수 치료를 받는 아이 엄마들의 수다 현장이다. 이들이 점심을 같이 먹는 식구가 된 지 내가 보아온 것만 해도 2년이 넘었다.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한 인연일것이다. 그만큼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로 보였다.
보통 나와 같은 돌봄 선생님들은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부분의 엄마들도 조용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엄마들이 모인 시간은 늘 왁자지껄 즐거운 담소가 이어진다. 이런 분위기는 대개의 대기 시간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휴식을 취하는 내게는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즐거운 마음들이 참 좋다. 그녀들의 즐거운 일상이 참 좋다. 그리고 참 고맙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시작했던 5년 전, 나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Y의 치료를 위해 발달장애 아동치료센터를 처음 가게 되었다. 낯선 직업, 낯선 환경에 앉아 숨 죽여 주변 환경을 둘러보는데, 사실 나는 조금 놀랐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온 엄마들의 표정이 무척 해맑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하하 호호 농담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어느 공간보다 해피바이러스가 넘쳤다. 우중충하고 어두운 내 얼굴과 달리 예쁘게 화장을 하고 깔끔하고 감각적인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가만가만 왜 이들의 얼굴은 나보다 더 밝고 건강해 보이는 거지? 나는 건강하게 자라준 자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동안엔 왜 모르고 살았던가? 그들은 나를 참 많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이 엄마들이 경쟁 속으로 자식들을 밀어 넣는 비장애인 아이들을 둔 나보다 더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못난 편견이 와장창 깨진 순간이었다. ‘행복은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란 진리를 재고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음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Y를 데리고 이 치료실에 1년 4개월을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자주 마주친 7살쯤 되는 J엄마와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J엄마는 항상 조금은 짙은 눈 화장을 했고 예쁜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원래 화장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한다. 그러나 아픈 아이 때문에 더욱 자신을 가꿔야 했다고. 자신이 밝고 행복해져야 아이를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이 초라하지 않고 당당해야 아이와 자신이 사회에서 더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일하고 있는 재활병원에서는 C엄마가 눈이 띄인다. C 엄마는 일하는 여성이다. 직장이 탄력 근무제가 이루어지다 보니 일과 아이 케어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 관리도 참 잘하는 여성이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등 조금의 짜투리 시간도 헛되이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 주변사람들을 얼마나 잘 챙기는지 때마다 소소한 감동의 선물을 주곤 했다. C엄마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행복해지려 노력 중이라고. 그래야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를 케어할 수 있지 않겠냐 면서….
‘신이여, 내 아이의 고통을 모두 거두어 주시고 대신 그 고통을 내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부디 허락 하소서…….’
아픈 자식이 있다면, 날마다 이런 기도문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 부모의 자리 아닐까? 자식을 둔 부모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닐까? 그녀들은 자식이 아픈 혹독한 마음들을 견디며 더 쾌활한 밝음을, 더 호탕한 웃음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듯했다. 그러므로 삶의 비밀을 누구보다 더 빨리 초 고속으로 찾아낸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들은 엄청난 마음의 지옥을 돌아 지금의 밝은 모습에 이르렀을 것이다. 상상컨데, 아니 충분히 예상컨데, 그녀는 벼랑 끝에 선 자신의 발걸음을 겨우 되돌려 비로소 긍정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철학자들이 일군 100년의 삶의 철학을 단 몇 년 만에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 나가는 것만이 우리가 취할 삶의 태도라는 것을. 그것이 이 모순의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라는 것을. 그러므로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나는 왁자지껄한 그녀들을 보며 철학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