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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14. 2024

그녀가 휴식을 취하는 방법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벚꽃이 저물고 장미꽃이 화려하게 피어오를 무렵이었다. 코로나19 덕분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푸르렀고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 시기에 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로서 Y의 일상 생활을 돕기 위해 그녀의 가정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일하는 여성이다. 보통의 어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양육은 그녀가 전담하고 있다. 그녀가 탄력 근무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의 둘째 딸인 Y는 발달장애 아동이다. Y는 공격성 행동들이 가득했다. Y는 거친 행동으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에서 만족을 얻는 것 같았다. 밥을 차려주면 “쏟을 거야!” 말하며 식판을 엎어 버린 다거나 액체가 담긴 컵이나 물통은 보는 즉시 모두 쓰러뜨리고 쏟아서 상대를 곤란에 빠트리는 것으로 욕구를 채웠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Y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에 간 Y도, 회사에 간 그녀도 12시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일반학교에 다녔던 Y를 오전에는 자영업을 하는 그녀의 남편이, 나머지 시간은 그녀가 전담해야 했다. 발달장애인들의 특수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피로감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Y는 기다림의 여백이 없는 아이이다. 병원 진료를 위해 잠깐의 대기 시간도 평화로이 허락하지 않았고 공원도 치료실도 데리고 다니기 힘이 들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문제성 행동을 유발하는 아이, 모든 행동이 공격적이고 산만한 아이가 바로 Y였다. 그래서 그녀는 Y덕분에 평화로운 일상을 단 1분 1초도 누리기 쉽지 않다. 

그녀와 Y 그리고 나. 우리는 한동안 함께 다녔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왕좌왕, Y에게 이로운 활동이 무엇 일지를 탐구하며 봄과 여름을 함께 보냈고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가을이 되었다. 풍경이 달라지듯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Y가 특수학교에 자리가 나서 전학을 했다.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와는 달리 매일 등교를 할 수 있었다. 방학에도 돌봄 교실을 보낼 수 있었고 하교 시간도 늦어졌다. 학교에서 급식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오후 4시까지 일을 늘렸다. 그녀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내가 Y의 일상생활을 도왔다. 이제 그녀도 Y도 12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Y가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하는 듯했으나 금새 고비가 찾아왔다. Y는 환경이 바뀔 때마다 감정의 변화가 큰 아이다. Y에게 주변 환경의 변화는 거대한 지각 변동과 같은 일이다. Y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성 행동들을 하나둘씩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도 Y의 패턴을 잘 알고 있는지라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힘이 빠졌다. 

그렇게 한 달여의 한 차례의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내고 Y가 다시 좋아지는 참이었다.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자기를 적응시킨 모양이었다. 학교는 Y를 사회적 인간으로 교육시켜 주는 우리가 가장 기댈 만한 곳이다. Y가 좋아진다는 것은 사회의 규칙을 이행 할 수 있도록 길들여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불행한 일이지만 자신을 포기하고 ‘우리’에 자신을 맞추어 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 생활을 하는 누구라도 그렇듯, Y도 자신을 지워야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되는 일은 자기 욕구 조절이 잘 되지 않는 Y에겐 더더욱 힘든 일이 된다. 그날도 Y와 내가 치료실에 다녀왔다. Y가 튕긴 공처럼 집안으로 튀어 들어 가자 그녀가 먼저 물었다.

“오늘 Y의 컨디션은 어땠어요?”

“좋았어요. 오늘은 다시 좋아졌어요.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그녀는 한층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잘 지낸다 하니 안심이 돼요. 그동안에는 12시에 퇴근해서 Y생각만 했어요. 제가 회사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회사에서 일에 집중하는 시간에는 Y의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좋아요. 그 자체가 제겐 ‘휴식’이에요.”

그녀가 지금 당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Y가 없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에게는 Y와 떨어져 일하는 시간이 ‘휴식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동안 Y의 불안, 분노, 욕구, 짜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모두를 그녀가 흡수하고 살았다. 그녀는 Y를 사랑하지만 Y와 떨어져 있고 싶어 했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회사 밖에서 휴식 취하는데 그녀는 회사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비록 여행이나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허락된 시간이 아닐지라도 그녀에겐 단비 같은 시간인 것이다. 그녀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사치스러운 금장식과 같은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회 돌봄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럴 때 장애인 활동지원사로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내 초라한 직업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일이라는 명분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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