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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20. 2024

너의 오늘을 축복해

“오늘도 행복하자. 너의 오늘을 축복해.”


요즘 내가 의식적으로 자주 하는 말이다. 이 시작의 기원은 J를 돌보면서다. J는 차지 증후군(CHARGE Syndrome)이다. 태아 발달기에 발생한 기형이 여러 장기에서 나타나는 희귀성 질환이다. 증상으로는 안면 비대칭, 안구 결함, 심장 결함, 청각 결함, 성장 및 발달 지연 등이 있다고 한다. J는 다행히 청각과 시각에만 결함이 있고 언어 발달이 늦지만 신체는 건강하다. 신생아때 분유를 식도로 넘길 수 없는 식이장애가 있었지만 부모의 엄청난 노력이 지금의 J를 있게 했다.


J는 언어 장애가 있어 하고 싶지 않은 것, 하고 싶은 것, 자기 욕구를 표현하는데 서투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손으로 막는 다거나 얼굴을 돌린다. 아주 싫을때는 주저 앉거나 들어 눕는 것으로 표현한다. 원하는 것은 내 손을 가져다 대거나 눈길로 사물을 쳐다보아서 요구한다. J는 자기 마음을 몰라줘서 너무 답답해지면 자신의 머리나 몸을 때리면서 거세게 울어버린다. 양육자에게 화풀이도 잊지 않는다. “내가 힘들다고요~,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라는 뜻이다.


최근 J의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가 된 듯 했다. J의 자학과 일탈된 행동이 늘자 우리는 J의 교육보다 정서 안정에 힘쓰기로 했다. 모든 치료사와 양육자가 J의 욕구를 최대한 들어 주려 노력했다. 응석이 느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J의 화를 키우는 일이 교육적으로 더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또 J가 우리를 자기를 보호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신뢰할때까지 기다려야한다고 생각되었다.


J는 골 보청기와 와우 보청기로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왼쪽 청각은 무 반응이고 오른쪽 청각은 보청기를 끼지 않은 상태에서는 75DB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끼지 않은 상태에서는 40DB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머리위에 안테나 하나를 더 갖고 세상과 소통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예민한 상황이 오면 왼쪽 눈썹을 찡긋하며 정지상태가 된다. J가 생각을 모으는 소리가 왼쪽 눈썹에 담긴다. 선명하지 않는 소리와 환경을 적응하기 위한 습성일것이다. 이렇게 J는 언어가 아니라 머리위에 달린 촉수를 보태어 듣고 예측하고 판단 한다. 그래서 통제를 당 하는 일, 자신이 원하는 데로 바로 바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을 가장 못견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양육자와 치료사가 이 아이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리 없다. 하기 싫어서 꽤를 부리는 것인지 진짜 힘이 들어인지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러니 훈육과 교육을 맡은 양육자와 치료사는 곤혹을 치른다. 치료사와 양육자는 J가 사회화되기 위한 방법들을 가르친다. J가 사회와 잘 어울려 살기 위해선 적당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J는 자기욕구를 방해하는것 같은 이 교육들이 무척 불편하다. 그래서 양육자는 J에게 규칙을 지키되 자기욕구를 올바로 표현하는 방법또한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규율과 틀에따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이 J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된다.


이제 갓 초등 1학년이 된 J의 일정이 늘었다. 하교 후 바로 치료실로 이동하여 6시 30분까지 치료실에서 보낸다. 4개월째다. 처음엔 잘 적응하고 재밌어하는가 싶더니 차츰 사회 통념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위한 교육들이 싫었을 것이다. 공부 좋아하는 아이들이 어디 흔한일일까.


J는 워낙 시크한 표정을 가졌다. 치료도 점차 실증이 났는지 짜증과 투정이 늘고 화를 품는 일이 많아졌다. 안면근육마비가 있어 표정이 더 시크해 보인다. 좋을때도 활짝 웃는 법이 없다. 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팔을 푸드득 거리며 뛰는 것으로 즐거움을 표현한다. 즐거움의 최고가 되면 돌고래 소리를 내기도 한다.


문득 나는 표정이 없는 J의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지 않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길 바랬다. J에게 그 이상 좋은 삶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J에게 하게 된 말이 있다.


“J야, 오늘도 행복하자. 너의 오늘과 내일을 축복해.”

“어머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시네요.”

“말 뿐인걸요.”

“말이라도 어디에요?”


수치료를 끝내고 옷을 갈아 입히면서 J에게 했던 말이 옆에 있던 아이의 어머니에게 좋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나는 정말 J에게 말이라도 축복해주고 싶었다. 정말이지 J에게 좋은 에너지가 닿을지 모를일이다. 그 후로 나는 J의 하루의 행복과 내일의 축복을 더 의식적으로 빌었다. 그리고 J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록 우리 가족들이 생각났다. J보다 훨씬 소중한 내 가족이니 말이다. 바로 카톡을 보냈다.


“우리 가족의 오늘과 내일을 축복해~ 우리 모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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