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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14. 2024

그 때가 되면 바로 멈춰 서야 한다

나는 하루 동안 장애인들과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때 함께한 일행 중에는 발달장애 아동 형제도 있었다. 이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이 형제보다 형제를 돌보아야하는 부모를 더 걱정했다. 정말이지 이날 형제를 케어 하는 것이 보통일이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나마 젊은 청년들이 참가를 했고 건장한 남성 사회복지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1회 여행 때처럼 조촐하게 우리끼리 갔더라면 정말 진땀을 흘릴 뻔 했다. 

여행 중에 나는 육아에 대한 기본 개념은 있어서 자꾸 아이를 들어 나르고 완력으로 제어하는 청년에게 그냥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한번 내버려 둬보라고 충고를 했었다. 전직 축구 선수라던 청년은 불쾌한듯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하며 내게 말을 되돌려 주었다. 

“이 아이 그러다간 정말 위험해져요. 강물로 자꾸 뛰어들려고 한다구요!”

나는 그날에 내가 알지 못했던 돌봄의 고통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결코 경험없이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후 나도 장애인 활동지원사 활동을 하면서 나를 검증할 기회가 생겼다. Y를 활동 지원할때의 일이다. 앞서 말했지만 Y는 보호자가 한시도 한눈을 땔 수 없었다. 이해를 돕자면 돌봄자를 괴롭게 하는 것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자기 욕구의 표현 방식이라 이해했지만 이 아이의 소통 방식이란 것은 참으로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의사선생님은 이 아이는 평생 우리가 그려놓은 울타리를 벗어나려 애쓰며 살아갈거라고 진단했다. 특수학교에서도 최고(?)의 어린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데리고 다니는 치료실 마다 가장 힘든 케이스라고들 걱정했다.

‘자기검열’, 나는 이 아이를 돌보면서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이 아이가 미울때도 있는데 괜찮은 건가? 이런 내가 과연 이 일을 해도 될 사람인가? ’ 이에 더해 한창 성장기인 내가 돌보던 아이는 1년 새 훌쩍 자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체격과 체력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엔 의연하게 잘 대처했던 것도 어느새 벅차졌다. 아이는 친절한 영희씨를 만만하게 생각해서 때론 엄한 표정과 태도를 보여야 할때도 있었다. 나는 아이가 이상한 일을 벌일때에는 짜증도 났다. 큰소리로 혼을 내는 일도 생겼다. 봉사정신이 깃든 일이라는 우아한 말로는 이 직업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돌봄의 윤리학을 고민하며 책을 찾아 읽었고 해답을 얻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와 협상을 해 갔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보통의 직업인이다. 때론 아이가 미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순간마다 나의 감정 상태나 인내심의 한계를 잘 알아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를 바로 멈춰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한계와 감정을 잘 알아채는 책임있고 일잘하는 일꾼이 되자.’

1년 4개월 뒤, 나는 아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일을 멈췄다. 아이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팔을 세게 잡아 멍이 들게 한것이다. 그때 나는 너무도 부끄러웠고 마음이 힘들었다. 나의 체력과 마음의 한계를 보았기때문이다. ‘조금만 더 참고 해보자.’라는 안일한 마음이 화를 불렀다. 그 때의 일로 이 직업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한다는 걸 알았다. 검증되지 않은 얄팍한 선량함이 아니라 철저한 직업의식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는것처럼.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 딸을 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딸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지원사 면접을 볼 때 지원사가 이 일을 봉사정신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할때 가장 싫다고 했다. 직업의 규정을 잘 지키며 일 하는 능력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흔히 사람들은 이일을 사회봉사의 개념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사람을 돌보는 ‘직업’일 뿐이다. 다른 직업처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다만 사람을 돌보는 일이니 만큼 자기 마음을 잘 알아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과 몸에 이상증후를 느낄때 바로 멈춰서거나 재정비 시간을 갖는 자기돌봄의 지혜가 이 일에 대한 최고의 전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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