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글 Sep 16. 2020

태어난김에 사는 인생


3개월간의 휴직 기간 내내 고민하다가 복직하지 않고 퇴사를 했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환경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퇴사 후에도 그냥 푹 쉬면 좋으련만 조급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이러다 영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영원히 우울증 환자로 낙인 찍히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앞으로도 이렇게 힘들거라면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유를 찾지 못하는 거라면 애초에 살아가는것의 이유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스님이 말씀하시길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으려하면 찾지못할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못찾게되면 결국 죽을 이유를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나의 성과와 존재의 가치를 동일시하면서 무언가 이루지 못하면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길가에 풀이 자라듯, 사람도 그렇게 태어나서 존재할 뿐인데,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무의식속에 인생을 승패로 인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목표를 이루는 것을 실패했다고 해서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한 존재하는 것에 실패할 수는 없다. 목표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태어난김에 사는 인생인데 얼마나 아둥바둥하며 살아왔나 싶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울감에 빠져 나 자신을 잃어가지 않는다.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것, 그것이 곧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 비행사 마크 와트니는 자신이 '왜' 화성에 남겨졌는지에 대해 집착하며 우울해지기보다 자신이 화성에서 '어떻게' 생존할지에 더 집중했다. 그렇게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하루하루를 견뎌 내면서 마침내 지구로 귀환한다. 그의 말은 곧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도 같다.

97p -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알키출판사)



신경정신과 임세원 선생님의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읽으면서 줄 친 부분이다. 책을 읽고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역시나 할 말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왜' 사냐는 말은 존재의 가치에 관해 묻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너는 왜 존재하느냐 묻는 것과 같다. 반면에 ‘어떻게' 살까 질문해보니 자연스럽게 대답이 떠올랐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고, 개인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던 답이 없는 질문, 도대체 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을 그제야 내려놓게 되었다. 어차피 낙오한거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남들과는 다른 샛길로 빠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도 죽고 싶다면 그때 또 쉬어가자고 마음먹었다.






*

'80년대생들의 유서' 입고처

https://linktr.ee/hong_geul


이전 03화 퇴근길 전쟁의 패잔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