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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Sep 16. 2020

퇴근길 전쟁의 패잔병

2017년 가을쯤.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던 게 흐릿하게 기억나는 걸 보니 초가을이었던 것 같다. 늘 그렇듯 6시쯤 퇴근을 해서 회사 앞 5분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양재 외곽에 있어서,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쯤 가야만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었다. 주변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다 비슷한 사정이다 보니 저녁 6시가 되면 정류장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게다가 정류장 앞은 좁은 2차선으로 퇴근하는 차로 얼기설기 얽힌 데다 짜증 섞인 클락션 소리까지 줄곧 들려왔다. 



그 차들을 뚫고 버스가 한 대 오면 대략 20~30명쯤을 삼켜 지하철역으로 나르곤 했다. 어디에 설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다가 버스가 정차하면 재빨리 뛰어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 당시 나는 번아웃을 지나 깊은 우울증으로 몸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일단 심신이 지쳐있으면 꽉 찬 버스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전의를 잃기 마련이다. 수십 명을 제치고 버스를 타는 것은 당시 나에게는 꽤 힘든 일이었다. 급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포기하듯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순번이 밀려난다. 퇴근길조차 전쟁이라니... 매일같이 벌어지는 이 전쟁에서 난 늘 패잔병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시기에 퇴근길에서조차 경쟁해야 한다는 게 힘이 들어 버스를 포기하고 지하철역까지 30분 이상을 걸어 다니기도 했었다. 



하루는 퇴근길이 유독 힘이 들었는데,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냅다 달리는 차들의 바퀴에 눈이 갔다. 빠르게 굴러가는 바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 저 바퀴에 치인다면 이 모든 게 끝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조차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흠칫 놀랐고, 나는 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라고 한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스트레스가 어느새 내 삶의 곳곳에 전이되듯 퍼져나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직장에 더 다녔다가는 정말로 내가 나를 어떻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휴직을 신청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순수한 방학처럼 느껴졌다. 건강회복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시기에도 매달 나가는 지출을 따져보며 앞으로의 밥벌이를 걱정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앞으로 계속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이렇게 엉망진창인 마음으로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가슴에 뭐가 얹힌 거 마냥 조여왔다. 앞으로도 이렇다면 정말 왜 살아야 할까. 왜 살아야 할까의 다음 스텝은 자연스럽게 그럼 어떻게 죽을까로 이어졌다.



지금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서 다른 환경을 찾으면 되었을 텐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힘들면 그만둬도 돼.”라고 나에게 왜 말해주지 못했을까. 그러던 중에 은유 작가님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눈이 축축해졌다. 그 책은 실업계 고등학교, 마이스터고를 나와서 바로 취업한 아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산업 현장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안전에 취약한 곳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죽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 아이들이 절벽 끝에서 SOS를 보냈을 때 어른 중 누구도 회사를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주지 못했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성실함, 인내심이 때로는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연에서 과거의 나의 모습을 보았다. 힘들 때 무조건 견디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특히나 OECD 자살률 최상위를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라면 말이다. 앞으로도 괴로운 날이 여러 날 지속한다면 스스로 말해줄 셈이다.

“힘들면 그만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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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들의 유서' 입고처

https://linktr.ee/hong_g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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