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즈음, 매일 밤 불 꺼진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였다. 잠들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잠에 들었다 깨면 올 내일이 끔찍했기때문이다. 당시 나는 편집증적인 직장 상사와의 마찰로 끔찍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렇게 괴로웠다면 그냥 그만두었으면 되었을 텐데, 당시에 나는 나에게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못했다. 이렇게 힘들면 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버텨보라고,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어느새 나는 번아웃증후근을 넘어서서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부정적 사고의 늪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랜 기간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였을까 항상 피곤했다. 나 자신을 극진하게 돌봐도 모자랄 판에,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것처럼 느껴져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며 거울 너머의 나 자신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을 때 휴직을 하고 그 후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내 감정을 거부하고 나를 돌보지 않은 결과였다.
퇴사 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상태가 몇 달간 이어졌다. 무기력은 일상이었다. 기본적인 생활인 잘 씻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두 번째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으며 기본적인 생활부터 다시 시작했다. 밥을 정성스럽게 챙겨 먹고 식물을 돌보고 산책을 했다. 겨우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지만 오랜 시간 비관에 절어있던 마음에는 허무함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전혀 모르겠을 때 삶이 이런 것이라면 그만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종종 생각했다.
그때부터 인생의 끝을 그린 책과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간접적으로나마 인생의 마지막에는 결국 무엇이 남는지 알고 싶었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종종 있겠지만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라고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실제 유서가 담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독일의 학자가 유서를 연구한 책 ‘이제 그만 생을 마치려 합니다’와 국내의 다수의 유서를 분석한 책 ‘자살, 차악의 선택’을 통해서 실제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를 접했다. 실제 유서를 보니 죽음 직전의 내뱉는 날 선 감정들에 숨이 막혔다. 한참을 읽다 보니 죽고 싶어서 썼다기보다는 죽고 싶지 않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같았다. 분노와 원망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 사람부터 세상에 미련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담담한 말투도 있었다. 마지막에 남기는 메시지의 어조는 저마다 달랐지만,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타인의 유서를 보면서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예고 없이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변치 않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끝을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다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과거에 매여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적 행위인 ‘유서 쓰기’를 통해 인생의 끝을 그려보면 도리어 잘 살아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고된 일상 속에서 잊히기 쉬운 진리인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라는 사실과 마주하기에 이보다 좋은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끝내는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해볼까. 죽지 않고 좀 더 살게 된 인생 무엇을 해볼까 생각하다가 주변 사람들과 인생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유서 쓰기를 함께해보고 싶었다. 최근에는 우울증, 번 아웃 증후군, 공황장애 등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다지만, 여전히 개인이 극복해야 할 병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는 항상 OECD 자살률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많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고립되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우울증조차 털어놓기 힘든 분위기라면 죽음이라는 더 어두운 주제에 대해서는 어떨까. 우리 사회도 웰다잉 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해서도 쉬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개개인의 아픔은 더 쉽게 꺼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시작해 주변의 80년대생 14명을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너는 괜찮냐고, 어떤 힘듦을 겪고 있냐고, 죽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냐고 물었다. 내 앞의 한 명에게 집중하고 질문을 건네자 살아오면서 겪은 숱한 상처와 그럼에도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온하게만 보였던 한 사람이 걸어온 울퉁불퉁한 삶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뜨거운 감정이 종종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다. 혹시 삶에 지친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만난 80년대생들의 인생이야기와 유서를 나누고 싶다.
1장에는 이 책을 쓰기까지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담았다. 2장에는 80년대생 14명의 인터뷰와 자필로 쓴 유서를 담았다. 14명의 이야기와 유서를 통해 인생의 끝을 생각해보고 남아 있는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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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들의 유서' 입고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