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인생을 마무리할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장 흔한 방법인 투신을 택한다면, 목격자에게 충격을 줄 테고,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할 테고, 상황에 따라서 부검을 해야 하면 법의관에게까지 폐를 끼쳐야 한다. 독극물을 택하거나 목을 맨다 해도 죽는 방법만 다를 뿐 누군가가 뒤처리를 해야 한다. 또 나의 죽음으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이 받을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그것만 한 민폐가 또 어디 있을까. 사실 자살은 사회적인 테러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아있는 가족들은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남아있는 삶이 망가진다. 살아있다는것은 실타래마냥 얽히고 섥힌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것이다. 이 관계를 말끔하게 도려내고 증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어진 생만큼 살다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아는 언니를 만날 일이 있었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언니로부터 장례비에 대해 듣게 되었다.
친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했는데
장례비가 천만 원쯤 들었데
나는 몰랐는데 장례비가 평균 천만원 이더라고.
그래서 자식들끼리 서로 얼마 낼지를 두고 다퉜다나.
그 말을 듣고 속으론 죽기 전에 장례비는 여분으로 남겨놓고 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니에게 말하길 가족들에게 남길 유서에 “장례는 가족들끼리 조용히 치르고, 화장한 후에 숲에 뿌려줘.”라고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가 말하길
화장만 하는 건 안 해준데.
장례도 결혼식처럼 세트 상품이라서
장례식장 비용을 치러야 절차를 밟을 수 있데.
죽음의 사회적 절차와 비용에 대해서도 무지했다싶다. 누군가는 죽고 싶으면 뒷일은 어찌 되었든 콱 죽어버리면 될 것이지 뭘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은 남겨진 사람들이 염려된다는 핑계로 아직은 떠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는 불시에 죽어버리기 보다는 삶을 잘 살아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후에 인생의 끝을 상상하며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유서에는 장례 방법과 비용처리, 남겨진 짐 정리에 관해 적었다. 이상하게도 유서를 쓴 이후로는 어떻게 죽을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한정된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여행계획을 짜는 마음과 비슷할 거다. 인생이 여행이라고 생각해보면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아도 절망적이지는 않다. 여행의 끝에는 추억이 함께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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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들의 유서' 입고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