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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Nov 03. 2024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3

멍이 든 여자와 더러운 아이 


#멍이 든 여자와 더러운 아이. 


“이거 … 진짜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와 아이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여자는 머리는 헝크러졌고, 얼굴에는 커다랗고 시퍼런 멍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니 팔에도, 발목에도 멍과 상처가 보였다. 여자와 함께 온 아이 역시 머리는 헝클어졌었고, 옷은 맞지 않은 사이즈를 입은 듯 팔다리가 다 짧았다. 아이는 제대로 씻지도 못한 듯 몸과 얼굴이 더러웠지만 멍이나 상처는 없었다. 


“불행을 산다는 거 … 진짜에요?” 

“진짜야.” 


멍이 든 여자와 더러운 아이를 흝어본 불행을 사는 여자가 말했다. 멍이 든 여자가 나이가 더 많아보였지만 불행을 사는 여자는 하대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 멍이 든 여자도, 행운을 파는 남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멍이 든 여자는 불행을 사는 여자 앞에 바짝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 어떻게요? 어떻게 사는 건데요? 아니, 내 불행을 어떻게 파는 데요? 파는 거면 돈을 준다는 건가요? ” 


멍이 든 여자는 불행을 사는 여자의 치마 끝을 잡으며 말했다. 말을 하며 감정이 북받쳐 오는지 여자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더러운 아이는 엄마가 울자 엄마의 다리를 꼭 껴안으며 같이 울었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무표정으로 두사람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너는 니가 얼마나 불행한지 나한테 이야기만 해주면 돼. 그 불행을 듣고, 나는 니 불행의 크기에 걸맞는 돈을 줄 거야.” 

“어… 얼마나요?” 

“그건 니 불행의 크기에 달려있지. 어디 한번 들어볼까?” 


말을 마친 불행을 사는 여자가 싱긋 하고 웃었다. 눈꼬리가 가득 휘어지며 웃는 여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섬뜩했다. 멍이 든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두 손으로 아이의 귀를 막고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멍이 든 여자의 남편은 노름꾼이었다. 노름에서 진 날이면 술을 진탕 먹고 집으로 와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자가 돈을 주지 않으면 그나마 남아있는 세간살이들을 여자에게 던지고, 아이에게 던졌다. 여자가 아이는 맞지 않도록 구석에서 감싸 안으면 발길질이 날아왔다. 하루 걸러 한 번씩은 벌어지는 일이었다. 여자의 몸에는 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고, 아이의 옷은 늘 찢기고 던져졌다. 여자가 식당에서 손이 부르터가며 설거지를 한 돈은 늘 그렇게 남편에게 뺏겨야 했다. 


멍이 든 여자가 왜 아이의 귀를 막았는지 행운을 파는 남자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멍이 든 여자의 마음에 행운을 파는 남자는 코끝이 찡해졌다. 그런데 멍이 든 여자의 입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입김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아직 입김이 나올 날씨는 아니었다. 멍이 든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그것은 처음에는 입김같이 미세하다가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점차 색깔이 생기고, 진해졌다. 그리고 그 연기 같은 것은 불행을 사는 여자의 손끝으로 향하더니 동그랗게 맴돌며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솜사탕처럼. 


불행을 사는 여자는 멍이 든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익숙하게 자신의 손끝에 생겨나는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덩어리가 점점 커지고 색이 진해질수록 여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엇이 저렇게 만족스러운 듯 웃는 거지, 행운을 파는 남자는 불행을 사는 여자가 왜 미소를 짓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이 정도 불행이면 아주 비싸게 쳐줄 수 있어.” 

“비싸게 쳐준다는 건 …” 

“이 정도 불행이면 천?” 

“천?? 천만원이요??” 


멍이 든 여자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 지 귀를 막고 있던 아이에게도 들려서 아이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행운을 파는 남자도 같이 놀라 불행을 사는 여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불행을 사는 여자는 흔들림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멍이 든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불행한 것들을 가엽게 여긴단다. 내가 비록 너의 불행을 사라지게 해줄 수는 없지만, 너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견뎌내느라 고생한 너에게 대가를 줄 수는 있단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불행을 사는 거지. ” 


불행을 사는 여자는 멍이 든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쇼파 아래에 있던 가방을 들었다. 행운을 파는 남자의 크고 낡은 가방과는 정 반대 되는 손바닥만큼 작고 고급스러운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에 손을 넣자 지폐 다발이 나왔고 돈 다발을 보자마자 멍이 든 여자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너는 그 불행을 견디느라 고생을 했고, 그만큼의 가치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이 돈이… 너의 불행을 이겨낼 힘이 될 수도 있고.” 


멍이 든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돈다발을 바라보았다. 평생 만져본 적이 없는 돈, 여자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겨우 두 손에 힘을 주고 돈다발을 받았지만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 진짜 돈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우와, 엄마 부자다!” 


돈다발을 바라보며 소리친 아이의 목소리에 멍이 든 여자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멍한 채 초점이 없던 눈에 천천히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멍이 든 여자는 불행을 사는 여자를 향해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 이건 정당한 거래니까. 난 너의 불행한 이야기를 샀고, 너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른거야.” 

불행을 사는 여자는 손 끝 위에 떠있는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알록달록하면서도 커다란 그 덩어리를 만족스럽게 보던 여자는 가방에서 막대 같은 것을 꺼내더니 쏙 하고 덩어리에 꽂았다. 진짜 솜사탕처럼 불행 덩어리가 막대기에 꽂혔다. 

“됐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막대기에 꽂힌 불행덩어리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멍이 든 여자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돈다발을 든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왈칵 하고 여자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를 따라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려 하자 행운을 파는 남자가 아이의 손에 네잎클로버 하나를 쥐어주었다. 


“엄마는 지금 기뻐서 그러시는거니까 같이 울지 않아도 돼. 이건 선물, 너와 엄마에게 작은 행운을 가져다 줄 거야.” 


남자의 선물에 아이의 눈이 눈물 대신 기쁨으로 찼다. 네잎클로버를 들고 헤헤 하고 웃던 아이가 엄마의 손을 붙잡자 멍이 든 여자가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활짝 웃으며 행운을 파는 남자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멍이 든 여자는 한번 더 불행을 사는 여자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후 한 손은 돈다발을 품에 안고, 한 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아이가 한번 더 뒤를 돌아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이 눈에 남아, 행운을 파는 남자는 오래 오래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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