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완 Nov 03. 2024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4

불행의 맛 


#불행의 맛 


멍이 든 여자와 더러운 아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남자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이야기를 하면 솜사탕처럼 피어오르는 불행이라니, 그리고 그 불행을 돈을 주고 사다니.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행운을 파는 남자의 의심스러운 눈빛과는 달리 불행을 사는 여자는 알록달록 솜사탕 같은 불행덩어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아까 그 여자의 불행이에요?” 

“맞아. 정확하게 말하면 ‘불행한 이야기’이지. 불행이 깊을수록 색이 진하고 다양해. 오늘 건 진짜 탐스럽네.” 


그 때 바람이 불어와 행운을 파는 남자에게 멍이 든 여자의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다. 멍이 든 여자는 그 돈으로 밀린 월세를 냈고, 아이와 함께 시장에서 장도 보았다. 네잎클로버 덕분인지 아이는 시장의 작은 과자점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과자박스를 받았고 태어나서 단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많은 과자들을 안게 되었다. 두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사서 집에 와서 같이 먹고 웃었고 남편 몰래 남은 돈도 잘 숨겨 놓았다. 아이와 엄마는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함께 밥을 먹고 있다고 바람은 전달해주었다. 


“당신 덕분에 그 두 사람, 지금 행복해하고 있네요.” 

“그래?” 

“당신 생각보다 좋은 ...” 


행운을 파는 남자의 말에 불행을 사는 여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되물었다. 그리고는 색색으로 몽글몽글 커진 불행덩어리를 만지다가 조금 떼어내어 혀를 내밀더니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여자의 행동에 남자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불행 덩어리라고 하더니, 그걸 입에 넣다니! 불행을 먹다니! 이 여자의 말과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보면 몰라? 먹잖아.” 

“아니 그러니까, 불행을 왜 먹냐구요?” 

“맛있으니까 먹지.” 

“맛있다니 그게 무슨…” 

“이 불행, 아니 불행한 이야기는 말이야 아아아아아아아주 맛있어. 먹어본 적 없지?” 

“남의 불행을 먹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죠.” 

“그거나 그거나. 한번 먹어보면 말이야, 이건 끊을 수가 없어. 진짜 중독되는 맛이거든.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서 그 비싼 돈 주고 불행을 사는 거야. 맛있는 거 내가 돈 주고 사서 먹겠다는데 뭐 잘못 된 거 있어?” 


여자가 불행 한덩어리를 또 크게 떼어내 입에 넣었다. 불행을 사다 못해 불행을 먹는 여자라니, 남자는 눈과 입이 모두 동그랗게 커진 채 여자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그걸 먹는 게 ... 아니 그게 왜 먹는 형태가 ...” 

“사람들은 나에게 불행을 팔아서 돈을 벌고, 난 그 불행을 맛있게 먹고, 서로 좋은 거 아냐? 아니 불행한 사람들한테 이야기만 듣고도 고생했구나~ 하면서 돈을 주는데, 나만큼 좋은 존재가 있어?” 


남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멍이 든 여자와 더러운 아이는 며칠 째 제대로 된 한끼도 못먹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 불행을 사는 여자가 준 돈으로 장을 봐와서 함께 밥을 먹고 있다. 멍이 든 여자에게 불행을 사는 여자는 구원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솜사탕 같은 불행을 오물오물 입에 넣고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남자는 어딘가 불편했다. 


“언제부터 그걸 먹었어요? 아니, 그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게 애초에 어떻게 나오는 거에요?” 


남자의 몰아치는 질문들에 여자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솜사탕 같은 불행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언덕 아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남 먹는 거 쳐다보고 있을 꺼야? 안가?” 


불행을 반쯤 먹었을 때 여자가 다시 남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남자는 크게 한숨을 한번 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당신은? 당신은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이에요?” 

“한동안은. 여기만큼 불행한 이야기가 많은 데가 없거든. 그러니 그 쪽은 원래 본인이 있던 곳으로 얼른 가.” 

여자의 말에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장 난 가로등과 쓰레기가 쌓인 좁은 골목과 낡은 집들이 가득한, 남자가 행운을 팔던 해랑 호수공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남자는 결심한 듯 여자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뭐해?” 

“나도 여기 좀 더 있으려구요. 당신이 하는 것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여기가 오히려 내가 더 필요한 곳일 수도 있고.” 


남자의 말에 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별 말은 하지 않은 채 계속 불행을 먹었다. 


“근데 왜 반말해요?” 


여자에게 남자가 물었다. 여자는 피식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했다. 


“편하잖아.” 

“그럼 나도 반말할게?” 

“그러던가.” 


그렇게 불행을 사는 여자 옆에 행운을 파는 남자가 자리를 잡았다. 


이전 04화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