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파는 사람들
#불행을 파는 사람들
그 날 이후 한 번 불행을 팔았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치 대결이라도 하듯 불행을 모아서 여자에게 불행을 팔고 돈을 받아갔다. 한꺼번에 많이 모아서 오는 사람도 있었고, 매일매일 조금씩 불행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후 베이커리 학원을 다니던 여자는 가게를 오픈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배우자마자 급하게 오픈한 탓이었다. 빚이 늘어갔고, 회사에서 잘렸을 때 보다 지금이 더 불행하다며 하루 건너 한번씩 찾아왔다.
양다리를 걸쳤던 여자에게 차이고 여행지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던 남자는 이번에는 본인이 바람이 나서 차였다. 하지만 사랑이 죄는 아니라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했다. 불행을 파는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불행을 천원에 샀다.
멍이 든 여자가 5번째로 찾아왔을 때 그녀는 손가락 2개가 없었다. 설거지 일을 하던 식당을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했다고 했는데 그 곳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그 이야기를 3번째, 4번째 왔을 때 보다 비싸게 5백만원에 사주었다.
불행을 사는 여자의 쇼파에는 불행의 솜사탕이 쌓여갔고 여자의 옷과 장신구도 화려해 졌다.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건 여자인데, 여자의 주변만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귀티가 났다. 불행을 팔러 오는 사람들은 큰 돈을 받아가도 다음에 올 때는 더 허름하고 불행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남자의 네잎클로버는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멍이 든 여자 이후로 불행을 판 사람들이 행운을 사지 않았다. 행운 때문에 행복의 기억이 생기면 불행을 사는 여자가 값을 깎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팔았던 네잎클로버가 거리에 버려진 채 나뒹굴기도 했다. 남자는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안가?”
남자가 길가에 버려진 네잎클로버들을 주워서 돌아왔을 때 불행을 사는 여자가 물었다. 짧은 질문이었지만 어떤 의미인 지 알 수 있었다. 남자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던 문제이기에.
“갈 거야. 내 행운은 … 더 이상 이 곳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니까.”
“이제 알았어?”
행운을 파는 남자의 말에 불행을 파는 여자가 크게 웃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아주 호쾌한 웃음이었다.
“원래 인간은 불행한 존재야. 작은 행운 같은 거, 그로 인한 행복? 그게 무슨 소용이야, 눈 앞의 돈이 더 중요하고, 어차피 다시 불행해지는데.”
여자는 쇼파 뒤로 넘어갈 만큼 신나게 웃더니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짐을 챙기는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는 입맛을 쓰윽 다셨다.
짐을 싸던 남자의 손이 멈추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은 마치 맛있는 사냥감을 눈 앞에 둔 늑대처럼 보였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머리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나한테 팔래? 엄청 맛있어보여.”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남자는 멈춘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행, 남자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쓸모가 없어진 지금 슬픈 감정이 드는 건 맞았다. 이 것이 불행인가, 그는 생각에 잠겼다.
남자의 머릿속에 생각이 굴러가는 것을 보며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한번도 불행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저 남자의 첫번째 불행은 얼마나 맛있을까. 분명 최상의 맛일 것이다, 한평생 좌절을 맛보지 못했던 사람이 느끼는 좌절과 불행은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한가. 여자는 지상 최대의 만찬을 눈 앞에 둔 기분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의 입이 드디어 무언가를 말하려 움직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