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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Nov 10. 2024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5

행운의 값 


#행운의 값 


그렇게 행운을 파는 남자와 불행을 사는 여자가 함께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을 팔러 왔지만, 불행을 팔고 돈을 받은 이후에는 행운도 하나씩 사갔다. 


불행했던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연기 같은 불행의 덩어리가 빠져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뭔가 홀가분한 얼굴이 되기도 했다. 펑펑 울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며 불행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난 이후에는 여자에게서 받은 돈과 함께 새로운 시작이라도 하듯, 남자에게서 행운을 하나씩 샀다. 그리고는 소중하게 돈과 네잎클로버를 함께 품에 안고 돌아갔다. 


바람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자에게 계속 전달해주었다.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여자는 불행을 판 돈으로 베이커리 학원을 등록했다. 어릴 적 꿈이었던 빵가게 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네잎클로버의 행운은 그녀가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도록 베이커리 도구들을 중고로 싸게 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양다리를 걸쳤던 여자에게 차인 남자는 불행을 판 돈으로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네잎클로버의 행운은 여행지에서 그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도와주었다. 


왕따를 당하던 중학생 아이는 불행을 판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네잎클로버의 행운까지 더해져 가해자들을 재판장에 세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팔았고,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사갔다. 작은 행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불행도 해결되는 것들을 보며 행운을 파는 남자는 혼자일 때보다 더 즐겁고 행복해졌다. 불행을 사는 여자도 그럴까, 하고 남자가 돌아보았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불행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가만히 동네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듯한 표정을 짓고는 아껴두었던 불행을 한웅큼 떼어다가 입에 와구와구 집어넣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여자가 섬뜩하게 느껴져 뒷걸음질을 치고는 했다. 하지만 불행을 팔러 온 사람들이 다음에 행복한 얼굴로 다시 행운을 사러 오는 것을 보며 ‘저 여자는 인간 세상의 나쁜 불행을 먹어 치우는 좋은 괴물인 것이다’ 하며 혼자 되내였다. 


“뭘 그렇게 기분 나쁘게 쳐다봐?” 

“우리 꽤 좋은 커.. 파트너 같지 않아?” 


행운을 파는 남자의 말에 불행을 사는 여자가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저렇게 극단적인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존재였나, 행운을 파는 남자는 서운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행을 사는 여자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고, 행운을 파는 남자는 네잎클로버를 코팅하고 있을 때였다. 얼굴에 멍이 든 여자가 두 사람을 다시 찾아왔다. 행운을 사러 온 것이라 생각한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맞았다. 


“행운은...” 

“불행을 또 .. 팔 수 있나요?” 


하지만 멍이 든 여자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불행을 사는 여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처음 그 때처럼 멍이 들지 않은 여자를 위아래로 흝어보았다. 


“불행을 또 사는 건 가능하지.” 

“그럼 .. 또 사주실 수 있나요? 천 … 천만원은 금방 사라졌어요. 밀린 월세 내고 남편 노름빚 갚고 하니까 없어지더라구요 … 빚을 갚았더니 남편은 오히려 더 신나서는 맘놓고 술 마시고, 노름하러 가버리고… 제가 식당에서 설거지해서 버는 돈으로는 다시 쌀 사기도 힘들어졌고….” 


멍이 든 여자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살짝 손짓을 했다. 그러자 멍이 든 여자의 입에서 다시 실안개 같은 것이 피어올랐고, 불행을 사는 여자의 손가락 쪽으로 가서 점점 동그랗게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번에 비해 많이 작았고, 알록달록 하지도 않았다. 


“십만원.” 

“네? 천만원이 어떻게 십만원이 돼요?!” 


멍이 든 여자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행운을 파는 남자도 덩달아 깜짝 놀라 불행을 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불행을 사는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손바닥만한 불행을 통통 굴리면서 말했다. 


“지난번 불행은 다 들었고 값을 치뤘고, 너의 새로운 불행한 이야기는 … 지난번에 비해 별로 불행하지 않았네. 빚 독촉도 사라졌고, 남편이 때리는 횟수도 줄었고. 게다가… 행복한 기억도 많이 있네. 과자 당첨 같은 …” 

“과자…?” 


멍이 든 여자가 그 말에 행운을 파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지난 번에 아이가 사간 네잎클로버 덕에 시장에서 하는 과자점의 이벤트에 당첨된 이야기인 듯 했다. 행운을 파는 남자도 바람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과자를 가져본 적이 처음이었고, 엄마와 함께 한입 한입 소중하게 아껴먹었다. 그런 아이를 멍이 든 여자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불행을 사는 여자가 피식, 하고 코웃음을 흘리고서는 말을 이어갔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아주 크네? 그걸로 한동안 행복하게 잘 버텼어. 불행이 별로 차지하지 않고 있다고, 지금 너. 그나마 너의 그 불안감을 불행으로 잘 쳐줘서 10만원인거야. 이거라도 팔래?” 


멍이 든 여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혼자서 입을 달싹이며 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뱉더니 갑자기 훽, 하고 행운을 파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행운을 파는 남자는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원망스러운 눈빛이었다. 멍이 든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불행을 사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손바닥만한 가방에서 10만원을 꺼내 주었고, 멍이 든 여자는 그것을 낚아채듯 잡고서는 뒤도 보지 않고 뛰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불행을 사는 여자는 손바닥만한 불행을 똘똘 뭉치더니 한입에 쏙 넣었다. 


“역시, 맛이 덜하네.” 


행운을 파는 남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양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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