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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Oct 27. 2024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2

불행이 없는 남자 

#불행이 없는 남자 


“헉…헉…”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87번째 계단을 올랐다. 운동복을 입은 여자가 알려준 심정동은 호수공원 뒤쪽 언덕에서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지나 뒤편으로 끝없이 이어진 계단 위에 있었다. 105번째 계단쯤 남자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털썩 주저 앉았다. 


“풍경은 좋네.” 


까마득한 계단과 함께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곧 해가 질 듯 핑크빛 하늘이 서울을 감싸고 있었다. 때마침 바람도 불어와 남자의 앞머리를 날리고 땀을 식혀주었다. 바람에는 어제 네잎클로버를 사간 사람의 이야기도 하나 담겨 있었다. 가지고 싶어하던 한정판 운동화를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구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지은 남자는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후들거리던 다리가 안정을 되찾자 남자는 팔을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은 계단은 몇 개 되지 않았고, 이제부턴 골목을 뒤져야했다. 


불행을 사는 여자는 가끔 어느 골목에서 불쑥 나타난다고 했다. 남자는 손으로 천천히 골목길의 벽을 흝으며 걸어갔다. 골목길을 5번쯤 꺾었을 때 남자는 이 골목과 아주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는 좁은 골목 한가운데에 쇼파에 앉아 까만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쇼파는 골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랗고 화려했고, 여자는 그 쇼파보다도 화려했다. 여자가 입은 원피스는 검은색이었지만 골목의 작은 빛에도 반짝거리고 있었고, 구두는 발목이 걱정될 정도로 높고 뾰족했다. 그리고 그 뾰족코 구두의 앞에는 남자가 쓰는 것과 똑 같은 찢어진 박스 종이가 놓여져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불행을 삽니다]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여자는 불행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하긴, 불행한 사람이 불행을 살 리가 없지.’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자신만큼이나 까만 고양이를 안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커플이세요?’ 라고 묻던 츄리닝 입은 여자의 말이 떠올라 남자는 눈을 피했다.  


남자가 시선을 피하고 한참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골목에 까만 어둠이 내려앉고, 수명이 다한 듯 가로등의 전구가 아주 약한 빛을 비출 때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불행을 어떻게 사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위아래로 흝어보고는 말했다. 


“불행이 없는데, 그 쪽은.” 


툭, 말하고는 흥미가 없다는 듯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여자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불행을 삽니다] 라고 써 있는 박스 종이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난 행운을 팔아요. 네잎클로버 하나에 1천원.” 

“…” 

“내 네잎클로버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줘요.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큰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그건 행운을 사는 사람에 따라 달라요.” 

“…” 

“근데 당신은 불행을 산다고 하니까. 불행을 어떻게 사는 건지, 불행을 파는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파는 건지, 그리고 불행을.” 


한참 살펴보던 박스 종이를 바닥에 놓고, 남자는 여자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왜 사는지 궁금해서. ”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꿋꿋이 여자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고, 잠시 후 여자는 안고있던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직접 보던가.” 


그리고는 여자는 고개를 까딱 하며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남자는 박스 종이를 내려놓고서 여자가 가리킨 옆으로 이동해 같이 앉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행운을 파는 남자와 불행을 사는 여자가 함께 쪼그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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