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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Oct 20. 2024

잠을 찾는 아이


잠이 오지 않아


베게에 머리를 콕 박은 아이가 중얼거렸어요. 며칠 째 아이에게는 잠이 찾아오지 않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밤이 되면 잠이 찾아와 포근한 이불 안에서 스르르 잠이 드는데, 아이에게는 잠이 오지 않았어요. 아이의 몸보다 크고 무거운 이불 안에 쏙 들어가도, 두 눈을 꼭 감은 채 얼룩말 인형을 껴안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았어요. 


며칠 째 잠이 찾아오지 않자 아이는 점점 피곤해졌어요.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을 타도 신나지 않고, 흙놀이를 해도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어요. 


“도대체 내 잠은 어디에 있는 걸까?” 


또다시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그 날도 아이는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아이에게 오지 않은 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아니 어디로 가버린걸까? 잠을 기다리다 못한 아이는 잠을 찾아 나서기로 했어요. 


다음날 아침,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얼룩말 인형을 품에 안고서 잠을 찾아 나섰어요. 당당하게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에서부터 잠을 찾아야 할 지, 아이는 알 수 없었어요.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옆집 아저씨에게 찾아가 보았어요. 밤 9시만 되면 옆집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가 아이의 집까지 울려 퍼졌거든요. 


“아저씨, 잠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의 질문을 들은 아저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침대 옆에 있는 두꺼운 책을 들고 오며 말했어요. 


“나는 항상 침대 맡에 이렇게 두꺼운 책을 놓고 자기 전에 조금씩 읽는데, 그럼 두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바로 잠이 온단다. 그러니 잠은 도서관에 있는 것 아닐까?” 


아저씨의 말에 아이는 마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찾아갔어요.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운 두꺼운 책들이 가득한 그 곳은 정말 지루하고 답답해지는 것이 잠이 좋아할만한 공간 같았어요. 심지어 도서관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죠. 


“여기라면 분명 잠이 있을 거야!” 


아이는 신이 나서 도서관 곳곳을 뛰어다녔어요. 하지만 큰 도서관 책장 사이 모두를 뒤져보아도 먼지만 폴폴 날릴 뿐, 그 어디에도 잠은 없었어요. 아이는 도서관의 모든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서를 찾아가 잠이 어디에 있는 지 물어보았어요. 하지만 사서는 아이에게 도서관을 뛰어다니면 안된다며 혼을 내고서는 내쫓아버렸어요. 


“여기에도 잠은 없구나.” 


도서관을 나와 아이는 터덜터덜 공원을 향해 걸었어요. 그 곳에서 아이는 공원 벤치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를 발견했어요. 이런 밝은 낮에 불편한 벤치에서도 잠을 자다니, 아이는 노숙자에게 다가가 잠이 어디있는지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이의 질문에 한쪽 눈만 떠서 아이를 쓱 바라본 노숙자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답해주었어요.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양을 세면 잠이 온단다. 그러니까 잠은 양떼 목장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그 말은 아이도 들어본 적이 있었어요. 예전에 유치원 선생님도, 아빠도 그 말을 했던 것 같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한 말이니까 맞을 거야, 아이는 마을 뒤편의 양떼 목장으로 향했어요. 드넓고 푸른 초원을 한참을 걷다 보니 하얀 양떼들이 뛰어노는 것이 보였어요. 하얗고 몽실몽실한 양들을 보니 따뜻한 이불이 생각나고, 저 품 위에 누워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이 곳에 잠이 있는 게 확실해." 


아이는 목장으로 달려가 양떼 한마리 한마리 사이를 헤치며 잠을 찾았어요. 하지만 오십여마리의 양을 세고 그 사이를 찾아보아도 잠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칠십오마리쯤 양떼 사이를 헤치고 지나갔을 무렵 아이는 양치기 소년과 부딪혔어요. 양치기 소년은 아이에게 왜 남의 양들을 괴롭히냐고 물었고, 아이는 잠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어요. 아이의 말을 들은 양치기 소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이에게 말했어요. 


“난 잠이 안 올 때면 따뜻한 코코아를 한잔 마셔. 그러면 온 몸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면서 잠이 잘 오거든. 그러니까 잠은 코코아 가루를 파는 슈퍼에 숨어있는 거 아닐까?” 


소년의 말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요. 그러고 보니 동네 슈퍼에는 없는 게 없었어요. 잠을 팔지는 않아도 수많은 제품과 코코아가 쌓여 있는 곳이었고 잠이 숨어있기에 좋은 공간이 많았어요. 분명 그 곳에는 잠이 있을 거야, 아이는 소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는 슈퍼를 향해 달렸어요. 


“어서 와라.” 


아이가 들어가자 슈퍼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주셨어요. 아이는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서는 먼저 코코아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보았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코코아 사이에 잠이 숨어있을까 살펴보았지만 잠은 없었어요. 그 다음으로는 우유 쪽에서, 그 다음으로는 과자 쪽에서, 그 다음으로는 젤리 쪽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잠은 찾을 수 없었어요. 


“여기에도 잠은 없어.” 


세 군데나 찾아다녔는데, 아무 데서도 잠을 찾을 수가 없었던 아이는 풀이 죽은 채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어요. 슈퍼 바깥으로는 어느새 땅의 색이 어두워지고, 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잠을 찾는 것을 실패했으니 오늘도 아이에게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이야, 무슨 일 있니?” 


슈퍼 한 구석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자 슈퍼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어요. 아이는 잠을 찾고 있었고, 도서관과 양떼 목장을 갔다가 슈퍼까지 왔지만 그 어디에서도 잠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어요. 아이의 말을 듣던 아주머니는 살포시 미소를 짓더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어요. 


“잠은 양떼목장의 소년이 말한 곳에 있는 게 맞단다.” 

“하지만 이 슈퍼 안을 모두 뒤졌는데도 잠은 없었어요.” 

“아니, 코코아가 아니라 그 다음 말에 답이 있다는 말이야.” 


아주머니의 말에 아이는 양떼 목장 소년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어요. 


‘난 잠이 안 올 때면 따뜻한 코코아를 한잔 마셔. 

그러면 온 몸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면서 잠이 잘 오거든.'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는?” 

“그렇지, 잠은 코코아를 파는 슈퍼가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곳에 있단다.” 

“하지만 제 이불도 따뜻하고 포근한 걸요.” 

“더 따뜻하고 포근한 게 있지. 얼른 집에 가보렴. 오늘은 분명 잠이 너를 찾아올 거야.” 


아이는 아주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이의 이불은 매일 따뜻하고 포근했지만 잠은 며칠 째 오지 않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눈을 찡긋 하며 말했고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어요. 물론 아주머니에게 다시 인사를 하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고 나왔구요. 


아이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쯤엔 어느새 해가 뒷산 너머로 숨어 완전히 어두워진 후였어요. 해가 지고 난 이후의 집은 너무 어두워서 빨리 불을 키지 않으면 무섭기 때문에 아이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집으로 빠르게 향했어요.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는 집을 바라보니 집 안에 밝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어요. 그리고 따뜻한 냄새도 나기 시작했어요. 


혹시나, 아이는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집 문을 열었어요. 


“우리 딸, 이제 들어오니?” 


아이가 문을 열자 집 안은 환했고, 따뜻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엄마가 서있었어요. 엄마의 옆 식탁에는 방금 아이가 다녀온 슈퍼의 장바구니가 놓여져 있었죠. 


“엄마가 출장 다녀오는 동안 씩씩하게 잘 지냈어?” 


엄마가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며 두 팔을 벌렸어요. 아이는 그대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의 목을 꼭 껴안았고, 엄마는 아이의 엉덩이를 받치고 두 다리를 들어 끌어안아주었어요. 


“응! 놀이터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고, 양떼 목장에도 가고, 슈퍼에도 갔어.” 

“씩씩하게 잘 놀고 있었네.” 


아이는 엄마의 목을 더 끌어안고 품으로 파고들었어요. 엄마의 양손이 아이의 등을 어루만져주자 아이는 등부터 온 몸이 따뜻해 지는 것을 느꼈어요. 엄마의 품 안은 포근하고 따뜻했고 점점 아이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있었어요. 엄마의 따뜻한 품에 안기자마자 며칠동안 찾아오지 않던 잠이 온 거예요. 


“어머, 우리 딸 벌써 자는 거니?” 


엄마의 말에 아이는 대답도 못한 채 눈도 뜨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는 살포시 웃으며 아이를 안은 채로 침대로 향했어요. 포근한 이불 속에 아이가 얼룩말 인형과 함께 누웠어요. 엄마는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드디어 잠을 찾았어…” 


눈을 감은 채 아이가 중얼거렸어요. 엄마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계속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아이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오랜만에 찾아온 잠으로 푹 빠져들었어요. 따뜻한 엄마의 손을 잡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고롱고롱 숨을 내쉬며 푹 잠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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