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맞는 맥주 선물, 여기서 골라봐
선물은 취향이다. 취향을 아는 것은 상대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은 어렵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그렇다. 아이들 선물이라고 쉬울까? 아니다. 아이도 취향이 있다. 어쩌면 부모 취향을 따라갈 수도 있다. 부모님 선물은 어떨까? 역시 어렵다. 예쁜 봉투 속 현금이 더 쉬운 이유다.
5월을 맞아 부모님 선물로 맥주를 생각하고 있다면, 한 번 더 고민하자. 큰 도전이다. 부모님 세대에게 맥주는 탄산이 그득한 황금색 액체다.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술이다. 그럼에도 맥주 선물이 신박하다면 부모님 취향을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먼저 갖자.
정리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맛있고 멋있는 부모님을 위한 맥주를 찾아 떠날 시간이다.
생각보다 달달한 맥주를 만나기 쉽지 않다. 원래 맥주는 갈증해소를 위해 태어난 음료다. 단맛이 도는 맥주는 밸런스가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질린다. 초조해하지 말자. 여기 답이 있다. 린데만스 프룻 람빅은 단맛을 선호하는 부모님을 위한 맥주다.
원래 람빅은 야생발효에서 오는 신맛이 강해서 마시기 쉽지 않다. 다행히 린데만스 프룻 람빅에는 과일 농축액이 녹아있어 친숙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과일도 다양하다. 체리, 라즈베리, 복숭아, 사과 향이 있다. 일단 맛있다. 신맛과 단맛의 균형도 좋다. 처음 마시는 사람이라도 거부감이 없다.
알코올은 3.5%에 불과하다. 술을 잘 못하셔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다. 250ml 용량은 음료수처럼 즐기기 좋다. 린데만스 프룻 람빅을 예쁘게 포장해서 드려보면 어떨까? 달달한 맥주와 함께 하는 두 분만의 달콤한 밤을 기원하면서.
미국 피프티 피프티 브루잉의 이클립스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스타우트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라 불리는 이 스타일은 우주처럼 고혹적인 흑색과 진한 다크 초콜릿 향을 품고 있다. 10% 정도의 알코올이 넘나들고 묵직한 쓴맛이 슥 들어오지만 다른 맥주에 없는 매력이 넘친다.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비밀은 맥주를 숙성한 배럴에 있다. 배럴에 다채로운 향미가 숨어있다.
이클립스는 숙성한 배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10% 알코올이 있는 이클립스 죠지 디켈은 죠지 디켈 버번 배럴에 숙성한 버전이다. 이클립스 버팔로 트레이스는 이름 그대로 버팔로 트레이스 베럴에 숙성했다. 무려 14.3% 알코올을 자랑한다. 이클립스 하이 웨스트는 금주법 이후 유타에서 최초로 허가된 하이 웨스트 증류소에서 나온 배럴에 숙성했다.
배럴에 따라 알코올과 향미는 조금씩 다르나 다크 초콜릿, 바닐라, 오크 향은 맥주를 관통한다. 바디감은 묵직하고 질감은 비단 같다. 현재 한국에 수입된 이클립스는 2022년 배럴에 넣은 맥주들이다. 와인처럼 묵혀서 마셔도 된다. 위스키와 맥주를 좋아하신다면 최고의 선택이 될 것.
어려운 외국 맥주들이 부담스럽다면 한국 냄새 짙은 맥주도 있다. 석복, 이름도 근사하다. 복을 소중히 여겨 낮추어 검소하게 생활한다는 ‘석복수행’의 줄임말이다. 안동 브루어리에서 출시한 석복은 우리 맛을 품고 있는 고제다. 고제는 소금이 들어간 맥주를 의미한다. 독일 라이프치히가 고향이다. 섬세한 신맛과 짠맛이 독특한 맥주다.
안동 브루어리는 고제 속에 한국 스타일을 접목했다. 방아잎과 소금 독에 있는 결정을 채취해서 넣었다. 고제가 가지고 있는 신맛은 젖산 발효를 통해 입혔다. 살구 향, 살짝 쌉싸름함, 부드러운 신맛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우아하고 깔끔하다. 카스와 하이트를 사랑하는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알코올도 4.1%로 적당하다.
전통적인 한국미가 들어있는 석복은 부모님과 함께 마실 수 있는 맥주다. 안동, 방아잎, 짠맛 나는 맥주 그리고 이것들이 어우러져 나오는 풍미까지,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빈대떡이나 전 같은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맥주를 들고 부모님 댁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놓치지 말자.
500년 전, 맥주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부분 맥주에서 훈연 향이 물씬했다. 보리를 건조하기 위해 나무를 태웠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맥아에는 훈연 향이 배었다. 17세기 들어 나무 대신 석탄이 사용되며 대부분 맥주에서 훈연 향이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수 백 년 전 방식으로 맥아를 만드는 곳이 있다. 독일 밤베르크다.
독일 밤베르크는 라우흐비어라고 불리는 훈연 맥주의 고향이다. 그중 슈렝케를라는 맥주가 갖고 있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맥주에서 소시지 향이 난다니,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내 말을 믿고 색안경을 벗어보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부모님이 특이하고 독특한 취향을 좋아하신다면 슈렝케를라 에알르가 제격이다. 이 맥주의 훈연 맥아는 오리나무를 태워 만들었다. 놀랍게도 훈연 향이 은은하고 우아하다. 색은 까맣지만 절대 쓰지 않다. 밸런스가 훌륭해 꿀꺽꿀꺽 넘어간다. 견과류나 치즈는 곁들일 수 있는 최고의 안주다. 슈렝케를라 에알르라면 센스 만점이라는 칭찬도 들을 수도 있다. 때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인생에 재미를 주기도 하는 법이다.
누군가 취향을 안다는 건,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의미다. 가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취향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올해 5월은 부모님의 취향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보면 어떨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물어봐도 괜찮다. 사실 선물보다 오랜만에 듣는 자식의 목소리를 더 좋아하실 테니.
전기저널 5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