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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한샘 Oct 27. 2020

맥주, 혁명을 만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맥주를 그려보다

4차 산업혁명이 도처에 화두다. 정체가 불문명한 이 혁명은 산업과 국가 심지어는 개인까지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차 산업은 IT, AR 또는 인공지능 같은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별나라 이야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융합, 연결, 결합과 같은 가치를 매개로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얼핏 보면 맥주는 4차 산업혁명과는 동떨어진 단순 식음료 산업으로 보이지만, 사실 다른 어떤 식품이나 주류보다 '산업 혁명'이라는 단어와 밀접하다. 최초의 인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의 농업혁명부터 18세기 1차 산업혁명, 19세기 중반 2차 산업혁명을 지나 정보화 혁명인 3차 산업혁명까지, 맥주는 매 지점에서 다양한 모습과 의미로 진화해 온 유일한 술이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지금 과연 맥주는 어떤 모습과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진화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 맥주는 여전히 유의미한 가치를 품을 것인가 아니면 별 의미없이 소비될 것인가?


인더스트리얼 4.0 시대에서 맥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전 발자취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를 상기시키는 SNS의 알림처럼 각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온 맥생(麥生)의 궤적을 아는 것이야말로 맥주의 미래를 예측하는 관심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을 품고 태어난 맥주


산업에서 혁명은 기술로 인한 비약적인 생산성의 증가로 인류 문명이 양적 질적으로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1980년 앨빈 토플러는 인류 문명 발전의 변곡점을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화 혁명이라는 세 지점으로 정리했다. 우리는 18세기 무렵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인류 역사 상 가장 중요한 산업적 혁명은 약 8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농업혁명이다. 


수렵 생활을 하던 인류는 지금의 이란과 시리아에 걸쳐 있는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비옥한 초승달로 불린 이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든 기름진 땅이었다. 이 곳에서 수확되는 풍족한 밀과 보리는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이기도 했지만 두 강이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범람은 큰 고통과 좌절감이기도 했다. 


농업혁명은 자연이 주는 이런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강의 불규칙한 범람을 막고자 한 처절한 투쟁은 관계시설, 댐, 천문학, 바퀴, 60진법과 같은 진보적 결과물을 만들며 결국 눈부신 농업 생산성을 이뤄냈다. 인류는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문자를 통해 지식을 기록하고 전파했다. 이처럼 비약적인 농업 생산성과 잉여 농산물이 만들어 낸 문명의 발전을 농업혁명이라고 한다. 맥주는 인류가 이뤄낸 농업혁명의 결과물 중 하나다. 

메소포타미아 맥주 (출처 : 윤한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밀과 보리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먹었다. 맥주는 남는 곡물과 빵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먹다 남은 빵이 젖어 우연히 생긴 빵죽은 근처에 있던 미생물들의 먹이감이었다. 야생효모와 젖산균의 손길이 닿은 빵죽은 시큼하고 달큰한 액체로 진화했다.


맥주를 의미하는 Bier(독일), Biere(프랑스), Birra(이태리), Beer(영국)의 어원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빵죽을 의미하는 Bappir, 고대 라틴어로 '마시다'라는 의미인 Bibere 혹은 고대 게르만어로 보리인 Bere에서 나왔다는 설은 농업혁명이 맥주와 긴밀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최초의 맥주는 우리의 김치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현대 맥주는 인간에 의해 엄격히 배양된 효모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면, 김치는 여전히 자연에 있는 젖산균에 의해 만들어진다. 8000년 전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미생물에 의해 자연 발효된 맥주는 김치와 같은 신맛과 쿰쿰한 향, 그리고 살짝 달큰한 맛과 약한 알코올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한 음료였다. 



맥주, 산업혁명을 만나다


중동에서 시작된 맥주는 페니키아 인들을 따라 유럽 대륙으로 넘어간다. 특히 북유럽 게르만족들에게는 일상 음료로 자리 잡게 된다. 수 천년 동안 유럽을 지배한 로마가 게르만족들에게 그 지위를 넘겨주면서 맥주 또한 유럽을 대표하는 술로 부상한다. 사실 당시 맥주는 물보다 안전한 음료, 에너지를 주는 음식에 가까웠다. 와인이 특별한 계층과 이벤트를 위한 술이었다면 맥주는 매일 마시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음료였던 것이다. 


중세시대 맥주는 가정뿐만 아니라 에일 하우스나 타번과 같은 선술집에서 만들어 마셨다. 양조 방식은 르네상스를 지나며 도제 방식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산업에 머물렀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커다란 물결은 그저 일상적으로 소비되던 맥주를 범상치 않은 존재로 바꿔놓았다. 


유럽에서 변방에 가까웠던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이후 해상력을 장악하며 역사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적극적인 식민정책으로 쌓은 부는 계몽주의를 만나 과학 기술에 투자되고,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석탄과 함께 영국을 1차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만들었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 응축기가 광산과 방직산업에 적용되며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에 의해 대체된 것이 변곡점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인류가 보지 못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이뤄낸다. 바야흐로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새로운 맥주 시대의 시작


농업혁명이 잉여 농산물을 만들었 듯, 산업혁명은 잉여 자본을 낳았다. 자본은 또 다른 자본을 탐했고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자본가들은 찾아낸 새로운 투자처 중에 맥주는 은행에 이어 간택받은 두 번째 산업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맥주는 어두운 색 에일, 포터(porter)였다. 1600년대 중반 브라운 에일을 섞는데서 시작된 이 까만 맥주는 노동자들부터 귀족층까지 널리 사랑을 받았고 수많은 식민지로 수출됐다. 자본가들이 이런 인기 아이템을 놓칠 리 없었다. 곧 포터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어졌고 맥주 양조장은 그때까지 보지 못한 규모로 커지게 된다. 또한 본격적인 유통 시스템이 구축되며 현대적인 펍의 형태도 나타났다. 본격적인 공장식 맥주 양조장들이 등장하면서 가격이나 품질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도제식 양조장들은 문을 닫았다. 오랫동안 일상제였던 맥주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인해 상품(commercial goods)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포터맥주양조장 (출처 : 구글이미지)

포터가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첫 맥주라면 페일에일(pale ale)은 기술 발전이 탄생시킨 맥주다. 맥주의 재료인 맥아는 17세기까지 나무를 태워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온도를 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 맥아들은 어두운 색을 띠었다. 그러나 18세기 본격적으로 석탄이 사용되면서 맥아의 색깔이 다양해졌다. 특히 밝은 색의 맥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밝은 색 맥아는 밝은 색 맥주를 만들었다. 그렇게 태어난 맥주가 페일 에일이다. 아름다운 갈색(amber)을 띄는 이 맥주는 까만색 포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색깔도 맥주의 일부분으로 즐기기 시작했고 유리 재질의 맥주잔도 덩달아 발전했다. 점차 페일 에일은 1차 산업혁명 시기의 절대 강자였던 포터를 밀어내고 영국의 인기 맥주로 올라선다. 


영국에게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도 새로운 맥주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영국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위한 땅이었던 인도는 맥주를 양조하기 힘든 곳이었다. 영국 이민자들을 위해 본국에서 다양한 맥주들이 수출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디아 페일에일(India Pale Ale)라는 맥주가 탄생했다. 


당시 런던에서 인도로 가는 여정은 고단했다. 9~12개월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끼고 적도를 두 번이나 넘어야 했다. 배에 실리는 맥주도 이 험난한 과정을 버텨야 했기에 양조사들은 수출 맥주에 더 많은 홉을 넣고 알코올 도수를 높였다. 런던의 작은 양조장인 보우(Bow) 브루어리의 대표였던 호지슨이 선두주자였다. 호지슨은 알코올이 강한 옥토버비어를 인도에 수출했고, 장기간 운송 속에 멋지게 숙성되며 인도 시장을 장악했다. 그리고 거꾸로 영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IPA라는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했다. 


이렇게 1차 산업혁명에서 탄생한 기술과 자본은 맥주를 일상재에서 상품으로 바꿨다. 맥주는 생산과 판매를 통한 수익뿐만 아니라 잉여 자본이익을 위한 투자수단이 되기도 했다. 18세기 이후 맥주는 영국의 힘과 정신을 전 세계로 전파하는 수단이었다. 특히 에일(ale)은 영국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맥주는 문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수여받았다. 



맥주, 대중상품이 되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미국에서 진행된 2차 산업혁명은 석유, 화학, 전기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촉발되었다. 독일은 보불전쟁에서 받은 전쟁 배상금을 과학과 공학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을 때, 독일은 디젤 엔진, 냉장 시설 등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급속하게 발전했다. 이런 기술적 성과를 등에 업고 등장한 맥주가 라거(lager)다. 


19세기 중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 안톤 드레허, 야콥 야콥센과 같은 라거 혁신가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 에일의 대항마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낮은 온도에서만 발효할 수 있는 라거(lager)라는 맥주에 집중했다. 또한 파스퇴르, 로베르트 코흐,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 같은 생물학자들이 효모와 박테리아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밝혀냈고 칼 폰 린데와 같은 공학자가 냉장시설을 발명하면서 수백 년 동안 알프스 산맥에서 자고 있던 라거 맥주를 세상에 끄집어냈다. 


필스너 우르켈, 하이네켄, 라데베르거와 같은 황금색 라거 맥주들이 19세기 태어나면서 맥주 시장은 에일(ale)에서 라거로 바뀌게 된다. 대중들은 미지근한 온도에서 마시는, 에스테르 향 짙은 에일 보다 황금색의 청량하고 시원한 목 넘김을 자랑하는 라거에 빠지기 시작했다. 라거 맥주는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에일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며 새로운 맥주 시대를 열었다. 게다가 독일은 맥주의 나라라는 명실상부한 문화적 정체성을 2차 산업혁명 이후 갖게 되었다.  

필스너우르켈 (출처 : 윤한샘)

독일이 라거를 세상에 선보였다면 미국은 이를 대중상품(mass product)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1908년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를 대량 생산 체제를 완성시켰다. 이 시스템은 모든 제조에 적용되었고 규모의 경제를 통한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 생산체계는 이전에 비해 고임금 노동자를 탄생시키며 획일적인 상품을 소비하는 '대중'(mass)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미국 맥주에도 적용됐다. 독일 이민자들은 미국 맥주에 라거 스타일을 정착시켰고 풍부한 옥수수나 쌀과 같은 부가물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게다가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있었던 금주령은 미국 맥주 시장을 대기업 독과점 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옌링(Yuengling), 버드와이져(Budweiser) 같은 맥주 회사들은 옥수수와 같은 부가물을 넣어 바디감이 가볍고 목 넘김이 좋은 라거를 대량 생산 시스템을 통해 양조했고 저렴한 대중상품으로 판매했다. 


이렇게 탄생한 아메리칸 라거는 2차 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세계대전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유럽과 달리 미국은 1960년 이후 강력한 경제력을 등에 업고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특히 미국의 문화는 리바이스, 코카콜라, GM, 맥도날드와 같은 브랜드와 함께 전파되었는데, 버드와이져, 밀러와 같은 미국 맥주들 또한 하나의 문화로 소비되었다. 미국의 영향력과 함께 아메리칸 라거가 20세기 맥주의 표준이 된 것이다. 



3차 산업혁명, 크래프트 맥주의 발판이 되다


1950년 이후 맥주는 2차 산업 혁명이 만든 기술, 대량 생산 체체, 매스 미디어,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라거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황금색 라거는 맥주를 상징하는 표준이 되었으며 여전히 대중 술로 소비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라거라는 단일 스타일은 맥주를 점점 더 단순하고 균질하게 만들었다. 


이런 균질성은 곧 시장의 성장을 둔화시켰다. 80년대 들어 맥주 시장은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는 역성장 시장으로 변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거대 기업 간 인수합병이 진행되었고 맥주는 매스 마케팅에만 의지하는, 별로 힙하지 않은 술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맥주 시장이 역성장하는 그때,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이 꿈틀됐다. 출발은 1979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한 홈브루잉 합법화였다. 


이 조치 이후 대기업 라거와 다른 맥주를 만들고자 하는 반항아(maverick)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캔 그로스맨(Ken grossman)과 짐 코흐(Jim koch)가 대표적이다. 켄 그로스맨은 샌프란시스코에 시에라 네바다를, 짐 코흐는 보스턴에 사무엘 아담스를 창업하며 ‘대중’ 맥주에서 벗어난 독특한 맥주를 만들고자 했다. 


시에라 네바다가 과거 영국 스타일을 바탕으로 미국 재료의 특징이 담긴 맥주를 만든 반면, 짐 코흐는 미 동부의 정신이 담긴 맥주를 선보이며 그동안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또한 이들은 높은 가격과 품질을 추구하고 맥주 속에 지역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진보적인 소비문화를 추구하는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꾸준히 성장하며 맥주 산업의 아이콘으로 주목받는다.

켄그로스맨 (출처 : 구글이미지)

80년대 후반 시에라 네바다와 사무엘 아담스의 방향을 공감하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과 혁신가들이 등장하고 기존 대기업 라거와는 구분되는 자유로운 스타일의 맥주들이 곳곳에 태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맥주를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원론적으로 크래프트는 공장식 생산(manufactured)의 반대를 의미하지만 점차 다양성, 혁신성, 지속가능성, 로컬러티 그리고 서브 컬처와 같은 의미로 확장된다.

짐 코흐 (출처 : 구글이미지)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2000년대 급성장한다. 대기업 맥주회사에 비해 보잘것없는 자본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터넷 때문이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맥주를 적극 홍보했으며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다른 크래프트 브루어리들과 연대했다. 또한 맥주 출시, 축제, 레시피 같은 정보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하면서 대중이 아닌 지역민과 밀접 마케팅을 시도했다. 크래프트 맥주 적극 구매층도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기존 대기업 라거에 질린 소비자들을 규합시켰다. 제3의 물결이 크래프트 맥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핵심적인 성장 배경이 된 것이다. 


8,275개 양조장, 29억 달러의 매출, 26백만 배럴의 생산량, 2019년 미국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만든 숫자다. 현재 크래프트 맥주는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약 100여 년간 라거가 지배해 온 지루한 맥주 시장에 3차 산업혁명은 크래프트 맥주를 통해 활력과 성장 모멘텀을 마련했다. 여전히 라거가 전 세계 맥주 시장의 90%를 차지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향한 변화와 혁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드디어 4차 산업혁명과 조우한 맥주


맥주는 태초부터 인류 문명의 변곡점과 함께 했다. 새롭게 도래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의심할 바 없이 맥주는 함께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맥주는 어떠한 모습으로 새로운 혁명과 조우할 것인가?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인더스트리얼 4.0 시대의 기술 융합적 관점은 맥주 산업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인공지능이 레시피를 짜고 맥주를 양조하는 건 이미 현실이 되었다. 스위스 루체른 대학과 독일 로텐베르크 브루어리는 AI가 만든 맥주 출시를 목도에 두고 있다. 더 나아가 빅데이터를 통해 맥주 소비자의 니즈와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 소규모 유연 생산 방식의 맥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양조자의 의도와 시대적 트렌드가 만나 혁신적인 스타일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용 맥주 기기 LG홈브루 (출처 : LG)

생산이 아닌 유통의 관점에서도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다. 그동안 양조자 중심이었던 맥주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예를 들어 RFID를 통해 소비자의 냉장고에 있는 맥주 종류와 개수를 파악해 자동적으로 배송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초연결과 소품종 유연 생산이 맥주 산업에 적용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AI가 줄여줄 노동 시간도 맥주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집중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어쩌면 맥주는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재탄생될 수 있다. 향미와 알코올은 물론이고 맥주 스타일도 완벽한 개인화된 제품으로 나오지 않을까? 반드시 양조장에서 생산될 필요도 없다. 재료가 키트 형태로 배송되면 물만 넣고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모습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산업혁명에도 맥주가 잃지 않은 본질이 있다. 산업혁명에 영향을 받아 왔지만 동시대를 같이 사는 우리와 소통하는 술이라는 것이다. 맥주는 산업혁명과 같은 변혁의 순간에 사라지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온 음료다. 맥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보편성은 5차, 6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맥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문화로서 수천년 동안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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