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거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됐을까?
'When Dinosaurs Ruled the World'
무너진 전시관,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가 포효한다. 화면 위로 흐르는 빛바랜 플래카드는 한 때 지구의 주인공이 공룡들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1993년 절찬리 상영된 쥐라기 공원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권력의 무상을 조소하며 막을 내린다. 변화하지 않으면 주인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맥주 세계에도 에일이라는 공룡이 존재했다. 현대인들에게 맥주 하면 황금색을 띤 시원한 라거가 자연스레 떠오를 테지만, 사실 이 세계를 오랫동안 군림했던 맥주는 에일이었다. 에일이 인류 역사와 오랫동안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온에서 발효하는 에일 효모 때문이었다. 19세기 파스퇴르가 이 작은 마법사의 존재와 능력을 증명하기 전까지, 인류는 무려 수 천년 간 에일 효모가 만든 어둡고 미지근한 맥주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19세기, 에일이 쥐고 있던 권력은 삽시간에 사라진다. 에일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새로운 왕좌를 차지한 맥주는 라거였다. 15세기 얼음 덮인 알프스 산맥에서 우연히 발견된 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라거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맥주 세계에 소행성이라도 떨어진 걸까?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는 맥주를 만든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 에일 효모가 섭씨 20도 정도의 상온에서 짧은 기간 발효를 끝내는 반면 라거 효모는 섭씨 10도 정도에서 오랜 기간 천천히 발효를 진행한다. 또한 에일 효모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향을 만들지만 라거 효모는 특별한 향 대신 깔끔하고 청량한 느낌을 선사한다.
두 효모는 게놈 구조도 다르다. 라거 효모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반은 에일 효모와 비슷하지만 나머지 반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나머지 반은 어디서 왔을까? 최근 라거 효모 유전자의 50%가 유럽이 아닌 남미 파타고니아의 야생 효모와 동일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미에서 우연히 유럽으로 온 효모가 에일 효모와 만나 변종이 됐다는 것이다. 머나먼 남미에서 어떻게 유럽의 알프스 산골짜기로 넘어왔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15세기 우연한 기회에 이 작은 친구는 인간을 위한 마법을 부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라거는 많은 양을 만들 수도,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에일은 1차 산업 혁명의 등을 타고 대영 제국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포터, 페일 에일, IPA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이에 비해 라거는 독일 촌구석에서 만들어지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맥주였다.
에일이라는 견고한 둑이 무너진 시기는 19세기였다. 첫 번째 공신은 파스퇴르였다. 그는 맥주와 와인 연구를 통해 발효와 부패가 화학적인 현상이 아닌, 미생물의 생명활동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던 화학자들의 '자연발생설'은 1862년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통해 완전히 부정됐다.
1876년 탄저균의 정체를 밝힌 로베르토 코흐의 역할도 컸다. 파스퇴르의 경쟁자였던 코흐는 세균을 배양하는 배지법을 발명하며 미생물학의 기초를 세웠다. 17세기 안톤 판 레이 훅이 현미경으로 발견한 이 작은 존재들의 정체가 드디어 250여 년 만에 만 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맥주가 태어난 지 수천 년이 지나서야 양조자들은 맥주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임을 깨달았다.
당시 연구들은 라거 맥주 개발에 사활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 슈파텐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 덴마크 칼스버그의 야콥 야콥슨 그리고 오스트리아 드레허 양조장의 안톤 드레허는 라거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양조사들이었다. 특히 1842년 체코 필젠에서 최초의 황금색 라거, 필스너 우르켈이 나온 이후, 이들은 라거가 영국 에일이 지배하고 있던 맥주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세 사람이 제일 먼저 관심을 기울인 일은 안정적인 라거 효모를 얻는 것이었다. 지금과 달리 생물학이 막 태동하고 있던 당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사람은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였다. 그는 뮌헨 공대 교수 칼 폰 린데에게 저온 발효와 숙성을 위한 냉장 시설 개발을 요청했다.
당시 독일은 1871년 통일을 이후, 급격한 공업 발전을 이루며 2차 산업혁명을 구가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의 금적적 지원과 기술적 배경 아래, 칼 폰 린데는 1876년 맥주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첫 냉장 시설을 발명했다. 1894년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는 즉시 슈파텐 양조장에 이 장비를 적용해 라거 맥주, 특히 황금색 라거 맥주 생산에 돌입했다. 뮌헨의 밝은 색 라거인 헬레스가 바로 이 도전의 결과물이다.
1883년 야콥 야콥센의 칼스버그는 라거 맥주 발전을 위한 또 다른 쾌거를 이룬다. 칼스버그 연구소장인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 코흐의 배지법을 이용해 라거 효모의 순수 분리 배양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라거는 안정적인 품질을 위해서는 동일한 퍼포먼스를 내는 효모가 필요했다.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여러 효모들 중 라거 효모 균체를 분리하고 배양함으로써 일정한 품질과 특성을 갖는 라거 맥주를 가능하게 했다. 라거 효모의 학명인 '사카로미세스 칼스버겐시스'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용어다.
자본주의의 태동도 라거 발전에 힘을 보탰다. 긴 발효 시간과 냉장 시설은 라거의 생산 단가를 증가시켰지만, 이는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 효과로 상쇄될 수 있었다. 소비자의 취향이 점차 에일에서 라거로 옮겨가자 라거 양조 설비에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됐다. 새로운 수익을 원하는 시장과 라거는 서로 좋은 궁합을 맞춰 갔다.
1842년 최초의 황금색 라거인 필스너 우르켈이 탄생한 이후, 하이네켄, 라데베르거, 슈파텐 같은 밝은 색을 띠는 라거들이 줄줄이 탄생했고,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에 열광했다. 아름다운 황금색, 잡미 없는 깔끔한 맛 그리고 시원한 목 넘김까지 새로운 맥주 출현은 혁명이 됐고 순식간에 세상은 뒤집어졌다. 변화 발전 없이 수천 년 동안 고인 물속에 있던 에일은 기술적 진보와 과학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기존의 패권을 잡고 있던 포터, 페일 에일, IPA 같은 영국 에일은 투명하고 황금색 라거에 밀려 선반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라거의 세계 지배권을 위한 마지막 퍼즐은 미국에서 완성되었다. 1908년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 대량생산에 성공한다. 대량생산 시스템은 합리적인 가격의 일정한 품질을 갖춘 공산품과 이를 구매하는 '대중 소비자'를 만들었다. 맥주도 역시 이 흐름에 동참했다. 특히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 간, 양조자들이 앞장섰다. 버드와이져의 아돌프 부쉬, 밀러의 프레드릭 밀러, 쿠어스의 아돌프 쿠어스는 미국의 풍부한 옥수수를 넣은 라거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해 대량 생산했다. 낮은 쓴맛에 청량감이 넘치는 이 맥주는 호불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했다. 게다가 1925년 GM이 발명한 가정용 냉장고는 라거를 가정집에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바야흐로 대중 라거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20세기 세계 대전은 맥주 세계의 지형을 변화시켰다. 전쟁 이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맥주 발전은 멈춘 반면 미국은 14년 간의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자국 맥주를 세계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세계 문화를 선도하기 시작한다. 당시 힙한 상품으로 소비되던 리바이스, 맥도날드, 코카콜라처럼 아메리칸 라거도 맥주 세계의 주류로 등극하게 된다. 19세기가 필스너 같은 유럽 라거의 전성기라면 20세기는 신흥 강대국 미국의 아메리칸 라거가 패권을 쥐기 시작한 시기였다.
21세기, 여전히 라거는 맥주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혁명이니, 운동이니 요란한 듯 보이는 크래프트 맥주도 전체 맥주 시장에서 찻잔 속 태풍이요, 시끄러운 변죽에 불과하다. 라거는 이 패권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인간의 본능인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술이 라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답은 '예스'다. 하지만 또 아는가? 맥주 세계의 소행성이 떨어질지. 아니면 부활을 꿈꾸며 호박 속에서 잠자고 있는 에일을 누군가 깨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