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 2018년 2월 그해 겨울은 유독 따듯하였다. 눈을 뜨면 의식의 흐름데로 생활을 해도 되던 그시절. 번듯한 내 집도 있겠다 결혼을 약속한 대상도 있겠다. 뭐 두려울게 없는 그런 순간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오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왔지만, 현실은 냉혹하기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퇴사전 직장은 내 지갑속에 명함으로나마 존재하였다. 감히 버릴수 없었다. 내 자신이 곧 명함이자, 명함이 내 자신이었다. 이미 회사를 떠났지만, 과거를 통해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나는 차마 명함을 버릴수가 없었다. 대리 직급으로 퇴사했고, 이미 연봉은 7천을 훌쩍 넘긴 터였다. 어느 누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물어 본다면, '네. 저는 연봉 7천짜리 인간이올시다.' 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게 퇴사를 한 이후에도 유효할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은 얼마 가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직장명과 연봉에 관심이 없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직장생활 할때야 어느 회사가 돈을 더 주니 마니 따지고, 올해 성과급이 얼마가 나오니 마니 주전부리로 이야기를 떠들었는데 회사 밖은 너무나도 바빴다.
막연히 지금 까지 모은 3억으로 주식을 통해 돈을 벌어도 직장 연봉보다는 더 모을거 같았고, 부동산 월세로 연봉 그이상을 돈을 벌수도 있을것 같았다. 온갖 유튜브와 책에서는 쉽고 빠르게 부자가 되는 방법만 설명하고 있었으니, 그런 착각에 빠져 사는건 이상하지 않았다. 나만 겪는 현상은 아니고, 유튜브를 보는 모든이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듯 했다.
그런 착각속에서 시작하였다. 물건팔이를 말이다. 퇴사를 하고 잘나간다고 소문이 나고 싶었다. 당당하고 멋지게 대책없이 퇴사했는데, 비루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돌면 얼마나 창피한 것이가. 어떻게든 거창하고 멋진 타이틀이 필요했다.그러기에는 물건을 떼다가 파는것은 어감상 좋지 않았다. 해외 수출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외에 물건을 파는 '무역' 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스스로 부여하였다.
실상은 무역이 아니다. 그저 한국에서 도매로 물건을 떼서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상품을 등록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파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온라인상에서 물건을 파는 것만 다를뿐 과거에 싸게 물건을 떼서 시장좌판에서 물건을 파는것과 다를바 없었다.
돈을 벌긴 벌었을까?
퇴사를 하지 않았으면 여전히 연봉 7천이상씩 따박따박 받앗을 터이지만, 퇴사후 나의 연봉은 0원이 되어버렸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도 없었던 탓에 물건을 온라인에서, 그것도 해외에다가 팔아서 돈을 버는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순간 연봉 0원인 신세로 전락해 버린것이다.
이때부터 였을까. 서서히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외 역수출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시작하긴 했지만, 물건 사입부터 주문/배송관리, 고객관리 등 손이가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음은 이미 부자이고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 였지만 실제는 연봉 0원에 무기력한 백수였다. 애초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대학입시를 위해 서생처럼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생활은 취업준비로 우물안
기대와 현실의 괴리로 인해 현실을 부정하고 모든일을 미루고 싶었다. 과거의 영광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지만 현실의 연봉 0원은 실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고 부정을 계속 하였다. 무기력증으로 인해 그나마 들어온 주문마저도 포장하기 귀찮아 주문 취소를 하는 사태까지 가버렸다. 이정도면 거의 막장까지 간것이다. (돈을 벌수있는데 제발로 돈을 걷어차다니)
각종 미디어의 쉽고 빠르게 돈버는 법때문에 어렵고 느리게 돈을 버는것이 쿨하지 않았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뭔가 방법이 잘못되었나? 뭔가 정보가 부족했나? 라는 생각에 또 인터넷을 뒤지기만 할뿐 정작 중요한 행동과 끈기를 가지고 돈버는 행위를 꾸준히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도 죄여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나왔으면 그이상을 벌어야 하지 않느냐는 스스로가 세워놓은 부담감에 사람이 맛탱이가 가버린 것이다.
퇴사준비는 사실 금전적으로 어떻게 항것인가를 준비해야하는 것보다 매순간 유리처럼 깨져버리는 멘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