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hear the people sing?
<울림, 어울림, 이끌어짐>
2002년 늦은 가을 부석사 저녁 예불을 위해 Sony PD-150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태백산 일주문에서 무량수전까지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목청 높여 ‘딴짓(?)’을 하느라 졸업을 앞둔 시점에도 21학점을 꽉 채워 들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막연하게 방송사 다큐멘터리 PD를 꿈꿨던 이유로 TV제작론 실습의 과제에 온 힘을 기울였죠. 태어나 처음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설렘과 가파른 산길은 스물다섯 살의 심장박동을 커다란 북소리처럼 뛰게 했습니다. 네... 그 '첫 작품'의 주제는 '북'이었고. 제목은 <울림, 어울림, 이끌어짐>이었습니다.
대학 4학년에야 만들어본 첫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북을 선택한 이유는 뭐였을까요? 신문고와 같은 사회적인 악기, 전쟁의 악기, 2002년 월드컵의 흥, 서편제의 판소리와 소리북, 신명... 무수한 생각이 지나갔지만 결국 인간 내면의 소리가 외면으로 크게 공유되는 닮은 악기는 직관적으로 '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북소리는 심장의 울림소리와 비슷합니다. 북에 관련된 명인들은 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낮고 웅장하지만 멀고 드높게 퍼지는 북소리.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본 집채만 한 대고를 만드는 '대고장'의 북 제작현장을 취재하고, '날뫼북춤'을 추는 고령의 어르신을 취재하고, 부석사의 법고를 취재하면서... 창작의 고통도 “실습”했습니다. 짧은 10분 내외의 다큐멘터리를 위해 1000분이 넘는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 이 직업이라는 걸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때부터 변방의 북소리처럼 다큐와 방송을 향한 열망의 심장은 뛰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어떤 카메라도 그 어떤 마이크도 가슴으로 함께 공명하는 이 북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정복하지 못한 산을 바라보는 산악인처럼... 목마름은 더 커져갔죠. 미디어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하는 지금도 제대로 된 진실은 카메라, 마이크 너머에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북소리>
"...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
2016년 모두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한 무리의 뮤지컬 배우들은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최근 콘서트장이 된 민주주의 집회 현장의 예고편이랄까요? 거리 공연은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더 인기를 끌게 된 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촛불이 프랑스혁명과 만인평등의 인간 심장소리를 노래하는 상징적인 노래와 같다는 걸 느끼게 해 줬습니다.
특히 위 영어 가사 부분은 늘 따라 부르면서도 울컥하게 만들죠. 처음 마이크를 카메라를 잡던 때, 모든 북의 명인들이 설명하시던 말처럼 “북소리는 심장소리”라는 그 설명이 비로소 시대와 겹쳐지는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거리에 북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드럼”소리가
들립니다. 비장한 가사의 혁명가가 아니라 K-pop히트곡이 응원봉과 함께 울려 퍼지고 전 세계가 즐기는 그 노래에 프랑스혁명때와 5.18 민주화운동때와 6월 항쟁때와 다르지 않은 마음이 흥겹게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