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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Nov 22. 2024

말들의 키스

여보세요? 보이세요?


[말들의 키스]


국제전화를 걸면

말과 말 사이

몸의 거리가 만든

침묵이 이어진다.


빛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이동한다는데

아침과 밤 사이를 오갈 땐

길을 헤멘다.

0.5초 아니 1초 ?

길잃은 빛을 타고

네 말은 늦게 오고

내 말은 늦게 간다.


늦은 시간만큼의 침묵은

하고 싶었던 만큼의 말들로

서로를 껴안는다.

그..런..그..데..래..서?

겹치고

아니.. 너.. 아니.. 너부터...부터

그래

너부터

귀를 내어주며 말들은 포옹을 한다.

들어주려는 마음은

기다려주는 마음이 되어

빛의 속도로

입을 맞춘다.  


수줍은 침묵이 익숙해지면

내 말이 끝난 뒤 시간의 빈칸에

PS. 기다림

기다림을 들은 네 목소리는 모스 부호처럼

내 목소리 사이사이 깎지를 낀다.


고맙게 다른 낮과 밤

그립게 같은 말과 말.


- 김틈 2024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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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우리가 전화를 걸 때 늘 쓰는 말입니다. 어른이 아이에게도 아이가 어른에게도 평등하게 씁니다. '여보렴?'하고 전화를 거는 어른은 없죠? 그런데 이 말은 바로 옆의 인생지기 '여보'를 부를 때의 '여보'와 같은 말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전화통화의 인사라고도 설명하지만 여보라는 말의 어원을 가져와 가까이서 누군가를 부르는 말로도 설명합니다. 여보는 '여기'와 '보다'라는 말이 합쳐진 걸로 이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여보세요는 '여기를 보세요'라는 말의 줄임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세요'의 말은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과 이야기할 땐 쓰기가 이상합니다. 비슷한 또래와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 쓰는 말인 '여보'는 늘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호칭이니까요. 인간의 시력으로는 '여기를 보세요'라고 할 때의 가능한 거리는 아무리 눈이 좋아도 50미터 이내일 겁니다.


  그런데 전화로는 '여보세요'라는 말이 무려 지구 반대편에서 전화를 걸어도 한국사람끼리 쓰는 말입니다. 볼 수 없는데 보라는 말이 참 이상하기도 하죠? 전화로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요즘의 휴대전화와 달리, 과거 유선전화는 걸거나 받을 때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여보세요'로 통일하기도 했겠죠?) 가까운 사람처럼 평등한 호칭처럼 여보세요? 하고 말했을 겁니다.


여기 보이세요?


  전화를 걸고 누군지 알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사이도 있습니다. 그립거나, 그리운데 더는 말할 수 없거나... 그럴 땐 '여보세요~'소리만 텅 빈 전파잡음 사이에서 울리고 있죠. 대중가요에서 무수하게 등장했던 이야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면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갑니다. 정말 추운 날은 추위 대피소가 되기도 해요 특히 둘은 좁지만 금방 따뜻해집니다. 여튼간에 동전 두 개를 넣고(그 뒤로는 더 늘어나다가 카드로 바뀌었네요) 동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그럭 떨어지면 상대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임창정 '소주 한 잔'2003년)

'(여보세요?) 처음엔 그냥... 걸었어.'(임종환 '그냥 걸었어' 1994년)


  두 노래의 장르는 다르지만, 노래 가사로 전화받는 상황을 표현해 봤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떠올려보면 '여보세요~'라는 말은 참 따뜻합니다. 가끔 드라마 속 회장님 댁 전화받는 대사처럼 '평창동입니다~'하는 전화도 있지만... 그런데 전화 걸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 어쨌든 '여보'라는 말과 '세요'라는 존칭은 '가까움'을 표현하고 느껴지게 하는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사춘기 사랑의 열병을 앓는 친구들은 말하지 않고 '여보세요' 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기도 했나 봅니다.


여보... 세요?


  가끔 공중전화를 보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내 이름과 번호가 뜨지 않아도 나를 알 수 있을까? 조용히 전화를 걸어서 '여보세요?' 하고는 인사를 건네고 싶네요. 처음 그렇게 전화를 걸었던 날의 기억처럼 말이죠. 목소리만으로 서로를 알고 따뜻하게 목소리를 나눠줄 수 있는 날들이 흔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예전엔 멀리 해외 출장 중에 가족에게 전화를 걸면 서로의 말이 겹치고 아이의 목소리와 내 대답이 겹쳤던 기억이 납니다. 말들도 서로 껴안는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 글의 앞머리에 즉석으로 시를 써봤습니다. 여보가 '여기를 보다'의 줄임말이라면 우리는 늘 가까워야 하는구나. 귀로 가까워지고 마음으로 가까워져야 하는구나 생각해 봅니다.


  오늘 퇴근하면서 그리운 이들에게 전화해서 공중전화에서 동전 두 개뿐(015B '텅 빈 거리에서' 1990년)인 마음으로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한영애 '누구 없소' 1988년) 하고는 진한 목소리로 온기를 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카톡보다는 전화가 따뜻합니다. 저는 그래요. 아직도 대학 1학년 때 선배가 5,000원짜리 전화카드 한 장과 함께 써준 노래가사 '전화카드 한 장'(꽃다지)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땐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 카드 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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