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과 돈
마음, 열려있지만 닫혀있는 ㅁ소리
ㅁ은 미음이라고 읽습니다. 처음 글자를 익힐 때 그렇게 배우죠. 그냥 자음만으로는 ‘므’하고 닫았던 입을 얇게 벌리며 부딪히며 나오는 소립니다. 요즘은 그렇게도 가르치더라고요.
이 ㅁ이라는 활자는 받침에서는 닫혀있지만. 모음 앞에서는 선명하게 열립니다. 특히 마음이라는 글자에서 '마'는 선명히 열리고 이어오는 '음'이라는 글자는 뚜렷이 영토를 그으며 닫힙니다. 지금 이 설명은 그 글자의 소리를 눈에 보이게 그려 설명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네모, 정사각형으로 보이는 이 ㅁ은 영토를 의미하는 소리가 맞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표현이 있거든요. 마치 땅을 놓고서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인지를 다투며 그어놓은 선처럼 생긴 ㅁ, 네모는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고대 공간의 인식)의 말에서도 등장합니다. 새삼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이 원리와 의미까지도 꿰뚫어 위대한 한글을 만들어주셨구나...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천원지방은 당시 천문학과 위상을 나타내는 여러 개념에서도 소개가 됩니다. 땅은 안에 있고, 하늘은 밖에 있다. 이렇게도 설명됩니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조선시대 화폐 '상평통보'에도 그 개념이 적용됐다고 하는군요. 상평통보의 상평은 상시평준의 줄임말로 '항상 균등한 가치를 지니는'이라는 화폐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고요. 통보는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부르는 화폐이름입니다.
엄마, 닫혀있지만 열려있는 ㅇ소리
땅인 ㅁ 네모를 이야기했으니 하늘인 ㅇ 동그라미도 이야기해야겠죠? ㅇ은 역시 선을 그어 닫아두었지만 맑고 길게 울리는 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울리고 이어지고 경계가 예민하진 않은 소리를 갖고 있지만 그 소리는 또 어렴풋 껴안아 울타리를 짓습니다. 아무래도 동그라미 자체가 동서남북 앞뒤를 따지지 않아서 그런 모양인가 봅니다. 그래서 하늘의 의미로 사용했나 봐요. 말소리를 낼 때도 ㅇ은 하늘의 의미와 느낌을 갖습니다.
특히 ㅇ이라는 이 글자는 모음 앞에선 존재가 없어집니다. 즉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열린 소리의 상태인 거죠. 받침으로 쓰일 때는 긴 여운을 두어 '응' 하고 울리는 소리가 됩니다. 그런 이유로 아프거나 울고 싶거나 괴로울 때는 ㅁ이 아니라 ㅇ의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속으로 닫은 채 침묵하기보다는 열린 상태로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자 ㅇ이 우렁차게 울리며 ㅁ을 껴안고 다시 열리는 소리 '엄마'죠? ㅇ의 엄은 열리고 닫히는 엄마가 나를 잉태하고 출산한 모습과 소리로 닮아있고, 다시 ㅁ에 ㅏ를 붙여 마~ 하고 부르는 것은 나라는 닫힌 유한한 존재를 열고 싶은 마음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랑 땅과 하늘
사람과 사랑 두 글자를 보면 차이점은 네모난 ㅁ과 동그란 ㅇ밖에 없습니다. 위치도 마지막 받침의 자리죠. 사람은 유한하고 땅을 딛어야 하고, 스스로 땅을 딛지 못하는 사람은 곧 세상에서 잊히고 마는 역사를 갖고. 사랑은 무한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무한대로 커지기도 하고,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하죠.
비슷한 말이지만 이렇게 다릅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유리해서 저 홀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사람이라는 유한한 땅이 있어야 그 위에 솟은 산, 뜬 구름, 심어진 나무, 피어오른 아지랑이, 금방 사라지는 무지개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이 건강하지 않으면 사랑도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요.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랑을 하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데 현실에서 참 찾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땅과 하늘이 함께여야 우리의 세계가 되는 것처럼 사람도 사랑과 함께해야 온전할 것 같아요. 신을 향하든, 친구를 향하든, 사랑하는 이성을 향하든, 가족을 향하든, 혹은 자신이나 자연이나 초월적인 존재를 향하든 사랑하고 살 일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부족합니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해요. 둥근 동전은 죄가 없습니다. 비싼 네모난 지폐가 문제죠. 가상의 코인도 둥글진 않아요. 복잡한 수학공식을 바탕에 둔 컴퓨터 프로그램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상평통보의 둥근 돈은 어떻게든 세상을 더 풍요롭고 상시 평균의 가치를 지니려고 한 돈인데... 지금의 지폐와 돈과 재력들은 각지고 네모나서 자꾸 아픕니다.
그래서 세상이 모났다.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 입는다. 생겨먹은데로 말하게 되나 봅니다. 사람이라는 말 아래 ㅁ이 마치 한 장의 지폐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사랑의 아래 둥근 동전처럼 서로 나누는 원탁처럼 둥글게 함께 시간과 역사를 구르며 살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ㅁ의 소리와 ㅇ의 소리를 입안에서 궁굴리다가... 돈과 하늘과 땅과 사람과 사랑까지 여러 이야기가 연결됐네요. 이 글을 읽은 이후부터는 내 입에서 나는 소리들의 세계를 연결해서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입안의 소리를 내 의도를 전하는 언어나 메시지로만 생각하지 말고 소리로 잘게 부수어 마치 전통 노래 정가의 '가곡, 가사, 시조'처럼 파자(破字:모음 자음 단위에 음을 길게 붙여 노래하는 형식)해서 그 음, 소리 자체를 즐기며 들어보세요. 그러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바람소리 닮은 ㅎ 소리가 많은지 따뜻하게 옷을 덮어주는 듯한 ㅈ소리 ㅅ소리가 많은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틈 하고 외칠 땐 단단하게 글의 땅을 다지고, 그 위에 여러분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마구 딛고 뛸 수 있고 싹을 틔울 수 있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