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온라인 수업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다.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작은 성취
2020년은 코로나로 긴 터널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일도 있었습니다. 유럽언어 중 하나를 새롭게 공부해서, 11월에 중급 레벨에 해당하는 B1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 언어를 배운적이 있기는 했거든요. 친구가 같이 배우자길래 별 생각 없이 친구 손 잡고 학원 취미반에 등록해서 몇 개월쯤 배웠죠. 대충 왕초보에서 초보로 넘어가기 전의 레벨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일본으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일본에도 학원이 많기는 많지만, 선데이수 입장에서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니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심함에 몸부림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화상회의도 다 하는데 언어 과외 해주시는 분이 없을까. 한 번 찾아나 보자 하고요.
혹시 ‘숨고’라는 사이트를 아세요? ‘숨은 고수’를 찾아준다는 곳인데, 여기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 주시는 과외선생님이 있나 검색을 해 봤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몇몇 분들이 간단한 이력을 보내주셨어요. 그 중 한 분과 어찌어찌 연결이 되어서 수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아쉽게도 광고는 아닙니다.)
선생님과 함께 가갸거겨 언어 공부를 했던 시간들이 선데이수에게는 무척 소중했습니다. 매일매일 작은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달까요. 모르던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되고, 그 전에는 전혀 뜻을 모르겠던 텍스트들이 눈에 보이게 될 때 조용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사실 당장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해서 처음에는 자격증 시험을 볼 마음이 없었는데요, 선생님이 언어공부를 할 때에는 그래도 작게나마 목표가 있는 편이 좋을 거라고 제안을 해 주셔서 자격증 시험에도 등록을 했고, 감사하게도 합격까지 하게 됐네요.
9월 편에서 온라인으로만 만난 사이에 대해 이야기 했었죠. 우리 선생님 역시 선데이수에게는 온라인으로만 만난 사이로 분류가 됩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한시간씩 꼬박꼬박 영상으로 만나던 사이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여느 친구들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됐어요. 가깝게는 느껴지지만 뭐랄까, 길거리를 지나가다 마주친다면 티비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설레고 낯설게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뭐, 그렇습니다.
우리, 집에서 만나요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선데이수는 내내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일본에 오게 되면서 처음으로 독립을 하게 됐습니다. 부모님 집에 살 때는 친구네 집에 놀러갈 일은 있어도, 집으로 친구를 불러서 노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친해서 부모님과도 다 아는 사이라면 모를까, 아파트 방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거실에도 다 들려서 좀 불편하잖아요. 잠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부모님과 마주쳐야 하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난생 처음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어 애착이 많았습니다. 이 집에 놓인 어느 하나 내 손으로 고르지 않은 게 없으니 하나하나 이야깃거리가 많았구요. 집은 또 사는 공간이니까. 아무리 치워도 내 생활의 흔적이 녹아있잖아요.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웬만한 사이가 아니면 누군가를 내 집에 초대하겠다는 마음이 잘 들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상황이 완전 달라졌습니다.
다른 것보다 내가 사람 많은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기 싫으니까, 이래저래 모이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고민하다가 집으로 오라고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요리에는 영 자신이 없으니 떡볶이나 수육처럼 조리법이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거나, 아니면 그냥 배달음식을 시켜먹자고 하거나 했죠.
집에서 만나면 어떻냐면요, 좀 더 나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어떤 스타일의 떡볶이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할 때, 당장 내가 만든 떡볶이가 증거물(?)로 제출되어 있으니, 나는 국물이 적고 달달한 떡볶이를 좋아해 가 그냥 아무렇게나 해 보는 말이 아니게 되는 거죠. 선데이수의 집 식탁 위에는 직접 만든 달력도 있어요. 작년에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모아 주문제작한 것인데요, 그 달력을 넘겨보며 남자친구에 대해, 그리고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또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고요.
선데이수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집들을 거칠 것 같은데요, 다음에 살게 되는 집은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장소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선데이수가 그랬듯, 여러분도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집에 대해 느끼는 바가 달라지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