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서.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행을 떠나라구요?
일본은 7월 말부터 ‘Go To Travel’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여행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요 몇 주 확진자 수 증가세가 하도 심각해서 연말연시 동안에는 일시정지가 된 상태입니다.
‘Go To Travel’이 뭐냐면요, 예를 들어 도쿄에서 교토까지 신칸센 왕복에 호텔까지 예약하려면 최소 4만엔은 들던 것을, 최대 2만엔까지 할인해주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웬만한 식당이나 상점에서 다 이용할 수 있는 지역상품권을 추가로 지급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요.
사실 이 정책이 시행되고 초반에는 일본에서도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7월에 일본은 ‘코로나 제 2파’라고 불릴 정도로 확산세가 심각했는데, 이 와중에 여행을 가라니요.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울한 나날들이 이어지던 와중에 이 정책이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주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맘때쯤 사람들을 만나면 ‘Go To Travel’ 이용 해 보았냐, 정말 반값 여행이 가능하냐, 어디를 제일 가 보고 싶으냐 등등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네요. 여행이라는 게 어쨌든 사람을 설레게 해 주는 주제잖아요. 매일 코로나가 어쩌고 하는 얘기만 하다가, 새로운 화제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활력이 되었습니다.
엄마아빠의 아이돌
8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사진첩을 넘겨보다 보니 부모님이 미스터트롯 콘서트장에 가서 찍은 사진이 나오네요. 물론 선데이수는 사진과 이야기로만 접한 일이지만요. 선데이수의 4월을 돌아보면서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썼었습니다. 올해 선데이수에게 방탄소년단이 있었다면, 부모님에게는 미스터트롯이 있었습니다.
그 때 기억나세요? 미스터트롯의 서울 콘서트가 원래 7월 말에 하게 되어 있었는데, 지자체에서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차일피일 미뤄졌죠. 그 때 스마트폰 너머로 엄마아빠의 좌절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참 웃겼죠.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8월 7일에 공연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공연장에서의 거리두기가 막 자리잡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야 해서 같이 찍은 사진은 없고 각자 찍어주어야 했나보네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왠지 함박웃음이 보이는 것 같은 사진입니다.
두 분은 그 날 미스터트롯 콘서트를 보고 그 전보다 더 사랑에 빠지셔서는, 요즘은 전화를 걸면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구성지게 트롯을 불러주시곤 합니다.
하루에 오천 보
6월 편에서 사무실로 돌아간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하고 7월부터는 다시 띄엄띄엄 재택근무 하는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5월에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되고 회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제 재택근무 다시 할 일 없을거다”라는. 그때는 정말 그럴 줄 알았거든요. 7월에 다시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니까, 코로나가 어쩌면 올해 내내, 또는 내년까지도 지속되는 문제일 수 있겠구나,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라구요.
그 전까지는 마땅히 공간도 없고 해서 식탁 한 구석에 노트북을 두고 재택근무를 했었는데요,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앉아있는 게 별로 좋지 않겠다 싶어서 오래 고민하다가 8월쯤에 간이책상과 의자를 장만했습니다.
여러분은 재택근무 어떻게 하시나요?
여러분도 저처럼, 괜히 시간끌다가 건강을 망치진 않으셨나요?
하나 더, 재택근무 하는 날에는 저녁에 꼭 산책을 나가겠다는 나름의 룰도 만들었습니다. 출퇴근 길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던 것조차 안 하게 되니까 운동량이 너무 줄더라구요. 2019년에는 하루에 거의 만 보 가까이 걸었었는데, 2020년에는 7천보 남짓으로 줄었습니다. 그나마 ‘하루에 오천 보’라는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세워놓고 있어서 이 정도로 그친 거라고 위안을 해 봅니다.
재택근무 하는 날 노트북을 끄고 퇴근하면 운동복을 챙겨입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하루에 오천 보는 걸어주자 라는 생각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정처없이 방황했습니다.
어찌보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을 겪었던 것보다도, 2020년의 한 해 동안에 더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길 한 켠에 누군가 일궈 놓은 텃밭, 온 동네 강아지들이 한 번쯤 들렀다 가는 수풀, 가로등의 모양까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