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시대의 장거리 연애
이번에는 장거리 연애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선데이수에게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일본 말고 한국에요. 내년이면 일본생활도 4년째가 되고, 머지않아 한국과 일본에서 떨어져 보낸 시간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길어지게 됩니다.
그나마 일본은 시차도 없고, 비행기로 두 시간 반 거리니까 보고싶은 마음이 들면 언제든지 왔다갔다 할 수 있다고 안심을 시켜두고 왔습니다. 실제로 코로나가 우리 일상을 마비시키기 전까지는 그래도 이래저래 1~2달에 한 번은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요즘은 둘 다 한국에 살면서도 여러 이유로 주말커플을 하는 일이 많잖아.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자, 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잘 지내왔어요.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일본은 3월부터 10월까지 거의 7개월이나 한국을 포함해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왕래를 막아왔어요. 10월에 제한조치가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 2주 한국에서 2주 격리기간이 있기 때문에 직장인이 휴가를 내고 왔다갔다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어느덧 선데이수가 연인의 얼굴을 못 본 시간도 1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6월에 일본은 일일 확진자수가 100명 이하인 날들이 계속되었어요. 어쩌면 이 나날도 지나가지 않을까, 라는 희망적인 공기가 감지됐습니다. 그맘때쯤 연인과 영상통화를 할 때면 “우리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리고 7월이 왔죠. 7월 초 100명 초반이던 것이 7월 한 달 수직상승을 해서 7월 31일 시점에는 무려 1천 명을 넘기게 돼요.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기를 ‘코로나 제 2파’라고 불렀는데, 짧은 희망을 맛본 이후여서인지 ‘제 1파’보다도 좌절이 크더라구요.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선데이수가 최근에 인상깊게 읽은 책이 있어요. 박선아 님의 에세이집인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입니다. 다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부분이 제게 깊이 와 닿아서 한참 멈춰있었네요.
인간이란 둘이 산책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산책이라는 것은 생활의 짬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인이나 연인과 하는 산책은, 장소를 정하고 약속을 하고 만나서 나서는 것이기에, 데이트나 여행은 되지만 산책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엔 생활이 없으니까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짬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곧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요.
- 타니구치 지로 <우연한 산보> 중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는 게 딱 그렇거든요. 서로 왔다갔다 하며 만날 수는 있다고 해도, 그건 몇주 전부터 장소를 정하고 약속을 하고 만나서 나서는 거니까 일상생활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됩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남들은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 또는 일본에 가서 서로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특별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역시 일상속에서 서로를 만날 때의 심상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죠.
그런데 코로나로 그나마도 누릴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정말, 그리운 마음이 사무치더군요.
7월에 ‘제 2파’를 맞으며 연인과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 보았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같이 하기도 하고요. 넷플릭스로 동시에 영화를 틀어놓고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고요. 영상통화를 틀어놓고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기도 하고. 술자리도 가끔 가졌네요. 실은 어느 하나 꾸준히 한 게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좋은데 뭐랄까요, 결국은 핸드폰 카메라 각도를 맞춰놓고 카메라로 서로를 보는 일이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보니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더라구요.
닿지 않는 손
7월 언제쯤이던가요. 미디어 아트 전시회에 갔었어요. 인터넷 시대에 연결에 대해 탐구하는 전시라고 해서 흥미가 동했습니다. 브런치에도 한 번 감상을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undaysoo/116
선데이수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 어디서든 잘 우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술관에서 울어본 건 그 날이 처음이네요. 아래 그림 보이세요? 이건 꽤나 큰 설치작품인데, 스마트폰 두 개가 마치 키스하듯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장면이에요.
하나 더. 이건 감상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품인데, 전시장에 들어가서 QR를 찍으면 스마트폰에 화면이 뜹니다. 이게 뭘까 라고 눌러보면 지문이 찍히는데요, 그 지문이 전시장 안 프로젝터로 비추고 있는 자연의 이미지에 어지럽게 찍힙니다.
스마트폰 속 세상에 아무리 지문을 묻혀보아도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일뿐이다 라는 메시지가 그 순간 화살처럼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네요. 스마트폰 속 연인의 얼굴을 속절없이 쓰다듬어 보던 어느 밤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선데이수는 장거리 연애를 하는 케이스이지만, 비단 장거리 연애만의 문제겠어요. 한국에서 잘 만나던 연인들도 코로나를 맞아 어디 갈 데가 없어서 답답해한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친한 친구에게 소개팅을 시켜줬는데요. 아홉시만 넘으면 식당도 카페도 문을 닫아버리니까 도무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대요. 날씨가 따뜻하면 공원에 산책이라도 가겠는데 요즘 또 엄청 춥잖아요. 애프터에 애프터를 거쳐 네 번이나 만난 다음에야 사귀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서로 서먹한 사이여서 어디다 사귄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고 하데요.
그 와중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더 열심히 사랑을 하고 있겠지만요. 때로는 이놈의 코로나가 우리 모두를 사랑하기도 어려운 세계로 데려다 놓은 게 아닌가 싶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가까운 미래에 제 소중한 연인을 만나게 되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아주 꼭 안아주고 싶어요. 그런 상상으로 오늘을 버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