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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Dec 31. 2020

<팬데믹 다이어리> 답이 없는 문제

5월, 길고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가.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되고


5월 초순경에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때는 어땠냐면, 길고 혹독한 겨울이 이제 지나가고 드디어 봄이 오나 라는 희망찬 기분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구요. 개인 점포들이 조심조심 스타트를 끊고,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뒤를 잇는 방식으로 식당과 카페들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거의 한 달 여만에 문을 연 스타벅스에 가서 시원한 프라푸치노 한 잔을 주문해 쪽쪽 빨고 나오는데 정말 들뜨더군요.



5월 초중순부터는 카페가 속속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테라스석을 차지하고 앉아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책 읽는 여유를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어요.


일본 언론에서는 ‘With 코로나’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는 전제하에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그 방역수칙이 대체 무엇이냐 라는 부분에서 처음 몇 주 정도는 과도기가 있었구요, 그렇다고 무한정 도시가 ‘일시정지’ 상태로 있을수는 없었기 때문에 하나둘씩 문 여는 가게가 늘었습니다.


앞에서 스타벅스 얘기를 했으니 스타벅스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테이크아웃 영업만 하다가 테이블 중간중간에 ‘앉지 마시오’라는 메시지 카드를 붙여놓고 나서는 먹고 갈 수 있게 해 주더군요. 요즘은 ‘앉지 마시오’ 카드를 치우고, 대신에 자리마다 아크릴 가림판을 설치해 옆자리와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 파주의 어느 스타벅스 매장인가에서 에어컨을 매개로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소름끼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케이스를 생각하면 아크릴 가림판을 설치하는 정도만으로는 완벽한 방역수칙이 되기 어렵겠지만요. 그래도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영업을 하긴 해야 하니까 “이 정도 수준”이라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거겠지요?


그럼 제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요.


그래서 나는 스타벅스에 가도 되나요?


사실 그 누구도 이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라고 답해줄 수 없었던 게 바로 2020년에 우리가 맞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코로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고들 하니까요. 어쩌면 우리들이 다 이런 혼란 속에 한 해를 났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생존을 위한 요리


사실 선데이수는 평소에 집밥을 도통 잘 안 해먹고 지냈어요. 일본은 한국식재료 구하기도 쉽고, 마트에서 파는 야채류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여건이 아주 좋은 편인데도, 왠지 손이 잘 안 가더라구요. 어차피 평일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거창하게 요리하기도 귀찮고, 홀로 살림이니 야채 한 번 사면 다 쓸 일이 없어 아깝게 버리게 되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요리를 멀리했던 거죠.


그래도 식사 챙기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동네 식당에서 테이크아웃 메뉴를 주문해 먹거나, 마트 식품 코너에서 간단한 반찬류나 도시락을 사 와서 먹거나 했죠.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런 식단으로 저녁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래놓고 속이 멀쩡하면 이상한 거죠 사실.


5월 즈음에 드디어 탈이 났습니다.


4월부터는 선데이수의 회사도 드문드문 재택근무 하는 날이 늘었거든요. 하루종일 집에 앉아 바깥 음식만 먹고 지내니 몸이 경고등을 켠 거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왼쪽 윗 배가 찌리릿 아픈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의 ‘고수’님들 도움을 받아 그게 위염 증상인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증상이 심해졌다가 좀 나아졌다가, 그렇게 반 년 이상을 시달리고 있네요.


'혼술'도 참 많이 했구요.


그맘때쯤 하는수없이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식품점에서 김치를 잔뜩 주문해 유리통에 옮겨놓는 게 시작이었구요, 마트에서 장 봐올 때도 가공식품보다는 야채 위주로 사려고 신경을 썼네요. 여전히 뭐 하나 하려고 보면 집에 없는 식재료가 있어서 새로 사오고, 사오고, 하다보면 식재료를 많이 버립니다. 드는 돈만 놓고 보면 사먹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꾸준히 해 먹고 있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니까 대충 맛있게 먹어줄 수 있습니다.


홈리스 아저씨


5월 즈음의 일인데요, 집 근처 벤치에 홈리스 아저씨가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홈리스라는 생각도 못했어요. 나름 머리 손질도 잘 되어 있고, 행색도 단정한 아저씨였거든요. 이상한 점이 있다면 자기 몸뚱아리만한 캐리어를 두 개나 들고있다는 거였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마주쳤는데, 매번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여느 홈리스들처럼 신문지나 상자를 바닥에 깔고 잠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돌아갈 집이 있는게 아닐까, 제 마음대로 추측을 해 보기도 하고요.


그 아저씨는 5월에 처음 나타난 이후로 거의 10월 말 정도까지 반 년 정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이나 아침에만 나타나고, 낮에는 어딜 가신건지 보이지 않더라구요. 날이 추워져서 다른 보금자리를 찾은 건지 어떤지.


굳이 가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분이 거리에 나오게 된 사정에 코로나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긴급사태 선언으로 도시가 잠시 기능을 멈추면서, 무급휴직을 받고 수입이 끊긴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코로나 정리해고자’만 3만 명이 넘는다고 하더라구요. 이것도 충분히 많지만, 이 수치는 집계기준이 워낙 까다롭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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