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데이수 Dec 31. 2020

<팬데믹 다이어리> 텅 빈 도시에서

4월, 일본식 락다운이 개시되다.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텅 빈 도시에서


선데이수가 사는 도쿄는 4월 9일부로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되었습니다. 누가 만든 용어인지 단어에서부터 이미 비장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일본식 락다운 조치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슈퍼마켓 정도를 제외하고 웬만한 상점들은 다 문을 닫았고요, 식당이나 카페도 아예 문을 닫거나 테이크아웃 위주로 영업을 하거나 했습니다. 좀 큰 기업들은 거의 예외없이 재택근무에 들어갔어요. 정부에서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필수인원을 제외하면 다 재택근무를 시키라고 넌지시 유도를 했고, 일본 기업들은 정부 말을 잘 듣는 편이라 재택근무 비율도 늘었죠.


그렇게 도시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다 집으로 숨어버리고 나니까,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되었던 그 기간 동안에는 그야말로 도시가 텅 빈 것처럼 보였습니다.



평소라면 주말 오후를 즐기러 나왔을 사람들로 북적댈 시간이지만,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고 고요합니다.


선데이수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주말이면 창 밖을 흘끗흘끗 내다보며 집에 옹송그리고 있다가 에코백을 하나 집어들고 산책을 나가거나 했습니다. 이 좋은 계절을 나 혼자 보내야 하다니. 혼잣말로 한탄하거나 하면서 동네 한 바퀴를 휙 돌았습니다.



산책길에 팔랑팔랑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아보려고 한참 씨름했네요. 결국은 그냥 땅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슈퍼는 계속 문을 열었습니다. 달리 할 일도 없고 하니까 슈퍼 구경을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 슈퍼에서는 야채를 사고, 이 슈퍼에서는 가공식품을 사고. 집 근처 슈퍼를 몇 개씩 돌아다니며 장바구니를 조금씩 채워가지고 집에 오곤 했습니다.


집에 와서 짐을 풀었는데 “아, 건전지를 안 샀네!”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도 있잖아요. 그 때는 그게 하나도 싫지 않고 오히려 좋더라구요. 건전지 사러 나가는 것조차 외출할 구실이 되니까.


말하자면 그런 소소한 이유들이 필요했던 거죠.



연휴가 두려웠던 이유


선데이수가 도쿄에 와서 3년을 살면서, 연휴에 어디 안 가고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매번 한국에 가거나 아니면 제3국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했죠. 연휴는 모두가 쉬는 날이다보니 어딜 가든 비싸고 붐비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부득부득 몇달 전부터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구요?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연휴가 좀 두려웠던 것 같아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 곳 도쿄에서 긴 연휴를 혼자 보낼 나 자신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고 할까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은 짧지만 연휴는 길잖아요. 연휴 전후로 주위에서 연휴에는 뭘 했다든지, 누구를 만났다든지, 주위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때 울적해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어요. 적어놓고 보니 되게 이상한 이유네요.


남자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까, “그럼 너는 여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다닌거야?”라고 묻더군요. “맞지만 아니기도 해” 라고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100개쯤 있다면, 그 중에 몇 개 정도는 남의 시선과도 분명히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쓸쓸한 공백 대신 화려한 사진으로 인스타 피드를 꽉꽉 채우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올해는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거의 열흘 가까운 ‘골든위크’를 집에서 혼자 보냈습니다. 나쁘지 않던데요. 집에서 밥 해먹고 쉬다가 산책 다녀오면 하루가 훌쩍 가고, 그렇게 며칠이 가고, 그러다보니 연휴도 끝나고 회사 갈 날이 다가오더라구요.



연휴 동안 선데이수의 친구가 되어 준 나무늘보 인형입니다.


요 며칠 다시 분위기가 나빠졌지만, 몇 주 전만 해도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SNS 피드를 넘기다 보면 “코로나 끝나면 어디어디 여행 갈거야”라는 귀여운 다짐들이 눈에 띄던데요. 누가 저에게 물어준다면, “코로나 끝나면 여행 안 가려고”라고 대답해주고 싶네요. 한국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보러 가면 모를까, 낯선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이상 설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생각도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요.


코로나 끝나면 여행 안 가려고



아베노마스크


4월 한 달 일본을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아베노마스크 얘기입니다. 일본의 마스크 품귀현상이 절정이었던 4월 1일에 아베 총리가 무슨 회의에서 “전 국민에게 마스크를 배부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마스크가 선데이수에게 도착한 시점이 5월 8일입니다. 딱 5주가 걸린 셈이네요.


사실 마스크를 받아 본 시점인 5월 초만 해도 비싸서 그렇지 마스크를 아주 못 구하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선데이수는 그냥 일회용 마스크를 쓰기로 했습니다. 대신 아베노마스크는 책장 한구석에 보관해뒀어요. 기념으로 간직하기로 했어요.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던 2020년을 나는 일본에서 보냈다는 증거로요.



아직 뜯지도 않고 간직하고 있는 아베노마스크입니다. 선데이수가 사는 지자체가 도쿄 안에서도 특별히 배부가 느린 편이라서, 인스타에 '인증샷' 올릴 타이밍을 놓친 게 아쉽네요.



그리고, 방탄소년단


아 그리고,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안할 수 없겠네요.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 동안 ‘방방콘’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서 무려 24시간 동안 방탄소년단의 무대 영상을 틀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데이수는 ‘아미’는 아니었구요. 회사 동료에게 ‘영업’을 당해서 어느정도 호감을 품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돈 낼 필요 없겠다, 주말에 달리 할 일도 없겠다, 한 번 틀어보기로 했어요. 설마 24시간을 다 보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처음 한두시간 정도 보다가 지치면 꺼야지 했죠.


정신 차리고보니 24시간이 지나가고,

그렇게 제 주말을 방탄소년단과 함께 보내게 됐습니다.


주말 이틀 동안 선데이수를 행복하게 해 줬던 방탄소년단 동생들.


그렇게 ‘아미’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아미밤을 주문했죠. 4월의 ‘방방콘’은 무료였지만 그 이후 온라인 콘서트들은 정식으로 티켓을 팔아서 유료로 열렸었는데요. 그때마다 방구석에서 피자나 햄버거를 주문해 놓고 대기하다가 ‘아미밤’을 흔들며 혼자 신나게 감상했습니다.


선데이수는 원래가 콘서트장의 혼잡한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 편이라, 방구석에서 즐기는 콘서트에도 나름 만족하고 있습니다. 실은 가수들이 더 서운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연장 특유의 들뜬 분위기와 함성 소리를 들어야 노래도 춤도 나오는 건데, 텅 빈 무대를 앞에 두고 공연을 해야 하니 아무리 프로라도 집중이 잘 안 되는 걸까요. 어딘지 어색해하는 방탄소년단 동생들을 보면 새삼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 실감이 됩니다.



온라인 콘서트를 하면 가수들이 하도 어색해해서일까, 요즘은 팬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띄워주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도 역시 실제로 대면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이 모든 날들이 지나가면 꼭 콘서트장에 찾아가서 수만 명의 함성 속에 선데이수의 목소리도 살짝 실어보내주고 싶네요.


'아미'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아미밤'을 들고 시청해 본 10월의 'ON:E' 콘서트입니다.

        

이전 04화 <팬데믹 다이어리> 고립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