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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Dec 29. 2020

<팬데믹 다이어리> 고립의 시작

3월,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비행기 타면 두 시간 반 거리인데


3월에는 한국으로 가는 하늘길도 막혀버렸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3월 6일에 기습적으로 입국제한 방침을 발표했는데요, 일본에 있는 외국인의 비자 효력을 다 중단시켜서 한 번 일본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일본 국적자의 경우에는 여러 방역조치를 하고 일본에 돌아올 수 있게 해 주고요.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앞다투어 비슷한 내용의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그 때 참 많은 생각이 들었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해외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참 쉽지 않구나, 자국민 다음일 수밖에 없구나. 라는 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구요.


다른 한편으로는 선데이수가 성인이 된 이후로 더 가까워지기만 했던 세계가 순식간에 서로에게서 멀어져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학교에서 여러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논의가 오갔는지를 배웠는데,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져내리듯 국가들 사이의 공조가 끊어지고 각국이 국경을 꽁꽁 싸매고 국경 안에서의 방역대책에 열중하게 됐죠. 서울에서 도쿄까지는 비행기 타고 두시간 반 거리인데, 순식간에 일 년을 기다려도 못 가는 곳이 되어버리다니요. 그 단절이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막연히 생각했죠. 곧 풀릴 거라고.


그때까지 일본은 7월 말에 올림픽을 하기로 되어 있었고, 언론에서는 여름이 되면 바이러스 전파세도 조금 꺾일 거라고 말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참 부질없는 희망이었네요. 결과적으로는 10월 초에 한국과 일본이 특별입국 조치에 합의하기 전까지는 왕래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주변에도 여러 이유로 한국에 돌아간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코로나로 일본에서의 직장을 잃었다거나, 지병이 있어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거나, 부모님이 아프시다거나, 뭐 이런 사정들 말이죠. 평소라면 삼삼오오 모여 송별회라도 해 주었을텐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메시지로 메시지로 이별의 인사를 주고받거나 했습니다.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괜찮다"고 짐짓 밝은 목소리를 냈지만, 정작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던가봐요. 3월 4일의 사진인데요, 회사에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간 게 발견이 되었습니다.


취소의 계절


여러분은 비행기나 호텔 표 예약할 때 어떤 등급을 고르시나요? 선데이수는 변덕이 심해서, 웬만하면 취소수수료가 무료인 상품을 예약하는 편입니다. 어느날은 A 호텔이 좋아보이다가도 누군가 B 호텔을 추천해주면 그 편이 더 좋아보이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음 편히 변덕부릴 수 있는 ‘자유’를 돈 주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올 한 해 별 생각없이 했던 그 결정들에 얼마나 감사하게 됐던지요.


브런치에도 한 번 공유한 적이 있는데, 선데이수는 4월 말에서 5월 초 연휴기간에 엄마랑 동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몇달 전부터 비행기표도 예약하고, 호텔이며 레스토랑에도 예약을 다 넣어놨었죠. 이미 2월 말부터 그 여행 못가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마음으로 3월 초까지는 버텼는데요. 일본 정부에서 입국제한 방침을 발표하면서 타의로 일본에 갇혀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취소를 안할 수가 없더라구요.


상담센터에 전화연결이 되기까지도 한참이 걸렸고, 취소신청이 시스템에 반영되기까지, 그리고 카드 청구가 취소되기까지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려서, 항공사에서 오는 이메일을 북마크 해 두고 체크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모노레일입니다. 이 풍경을 못 본지도 벌써 1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올림픽이 연기되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악화되어 가던 끝에, 3월 24일에 IOC와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오피셜로 기사가 나는 건 또 느낌이 다르더군요. 올림픽이 연기되다니. 선데이수가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이 또 있을까요?


당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락다운 조치를 시행하는 국가들이 많이 있었는데, 일본은 아니었죠. 고위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등의 부탁만 엄청 했어요. 올림픽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해서 그랬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올림픽이 연기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마 가까운 미래에 일본도 락다운에 준하는 조치를 하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데이수는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 TV를 거의 보지 않는데, 그 당시에는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뉴스채널을 틀어놓고 오늘은 무슨 소식이 있나 주의깊게 들었어요. 새로운 소식은 없고 매번 외출을 자제하라느니 하는 뻔한 소리만 해 대서 답답하던 차, 4월 초에 드디어 긴급사태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식 락다운 조치가 시행이 됐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조금 더 풀어볼게요.



꽃잎 위에 눈은 쌓이고


그러고 보니 올해 3월에는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3월 초도 아니고, 3월 말 도쿄에 눈이 내린 거에요. 도쿄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편이라서 눈이 거의 안 내립니다. 겨우내 눈 한 번 보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3월 29일의 어느 날이었는데요, 어쩐지 날씨가 좀 쌀쌀해지나 싶더니 창 밖으로 눈발이 훨훨 날리더라구요. 이게 웬일인가요. “역병이 돌더니 하늘도 노하셨나봐”라며 창 밖 사진을 찍어 동네방네 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쿄 옆 동네인 사이타마현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벚꽃잎에 눈이 쌓인 흔치 않은 장면입니다. 사진출처는 tenki.jp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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