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필요와 불안, 그리고 사재기
2020년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1월달에는 어떤 불길한 징조를 보여주고, 2월달에는 이 모든 게 본격적으로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네요.
2월 28일에 도쿄 모처의 마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매대가 텅텅 비어있죠. 듣기로 한국에서는 사재기가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하던데요. 선데이수가 사는 일본에서는 사재기를 아주 가깝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태풍이나 지진이 워낙 잦은 나라라서 더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 야채 중에서도 좀 오래 쓸 수 있겠다 싶은 것들, 그러니까 감자나 고구마 양배추 같은 것들은 다 팔리고 없었고요, 쌀이나 면 같은 탄수화물류, 알콜성분이 들어간 물티슈, 화장실에서 쓰는 두루마기 휴지 등등이 사재기 열풍의 주요 타깃이 되었습니다.
마스크야 뭐, 말할 것도 없죠. 마스크 공급이 그나마 원활해지기 시작한 여름 나절까지는 아마존이나 라쿠텐을 뒤져 마스크를 구입하곤 했습니다. 일본은 KF94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 일반 덴탈 마스크를 사게 되는데, 50개 들이 한 상자에 6~7만원 정도 주고 사면 잘 산 거라고들 했어요. 그나마도 상점을 잘 골라야 했죠. 주문 이후에 제작에 들어가는 곳, 이미 제작된 물건이라도 중국에서 발송되는 곳 등이 있어서 잘못하면 주문하고 몇 주씩 기다리게 됐거든요.
그것도 도쿄가 그랬다는 거고, 일본 안에서도 교외나 시골 지역은 그 정도로 사재기가 심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일본에 기반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마스크를 넉넉히 보내줘서 당분간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혼자 나와 사는 선데이수로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맘때는 회사 동료들과 점심 먹으면서 생필품 얘기를 그렇게 했네요. 마스크는 충분히 있느냐, 휴지는 얼마나 있느냐. 이런 이야기를요. 휴지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 회사로 몇 개쯤 가져다주기도 하고. 나름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던 기억입니다.
보고싶은 엄마
사실, 2월달에는 무척 기다려지는 일이 있었어요. 엄마가 일본에 놀러오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시기가 참 절묘했습니다. 엄마는 2월 21일에 왔다가 2월 23일에 가셨는데요, 그 유명한 ‘31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게 바로 직전인 2월 18일의 일입니다.
엄마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전전긍긍 했습니다. 저로서는 세상이 하수상할 수록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멀쩡한 비행기 표를 버릴 수는 없으니 그냥 와라”고 우겼어요.
엄마는 엄마니까, 제 고집을 못 이기고 날아왔죠.
엄마가 일본에서 머무는 동안에 한국에서는 연일 속상한 소식들이 들려왔어요. 2월 21일에는 확진자 수가 최초로 200명을 돌파했고, 2월 23일에는 500명을 넘어섰습니다. 실은 엄마가 오시면 둘이 맛집도 가고, 디저트 카페에도 가고 싶었는데요. 연일 코로나 뉴스가 이어지니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으로 한국 뉴스를 검색하며 “아이고 아이고” 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 납니다.
그 때 엄마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저는 회사에 휴가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엄마는 혼자 가면 되는데 뭐하러 휴가를 내냐고 했어요.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못 이기는 척 엄마 혼자 가도록 했는데, 그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보게 될 걸 알았다면 공항에 들어가는 엄마 뒷모습을 봐 둘걸 그랬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보고싶은 엄마. 엄마 얼굴이 보고 싶어서 가끔 영상통화를 거는데, 화면 속 엄마는 카메라 각도를 너무 엉망으로 들고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요. 엄마의 앞니 또는 콧구멍을 바라보며 통화하기 일쑤입니다. 언제쯤 카메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엄마 얼굴을 실컷 볼 수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