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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an 02. 2021

<팬데믹 다이어리> 혼술하는 밤

9월, 혼술하다 위염에 걸렸다.

<팬데믹 다이어리>는 일본 도쿄에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선데이수가 보낸 2020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해 2020년을 보내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혼술과 건강


여러분, 올해 혼술 많이 하셨어요?

선데이수는 올해 혼술 많이 했어요.


선데이수 주변에도 코로나로 혼술이 늘었다는 친구가 많더라구요. 여럿이 만나서 자연스럽게 술 한 잔씩 하는 것도 재미인데 그런 자리가 줄어드니 혼자라도 마시게 됐다구요. 확실히 인스타 피드를 봐도 집에서 와인 한 잔 따라놓고 넷플릭스 보고 있다는 스토리가 종종 올라오네요.


실은 해외에 혼자 나와 살면서 코로나 아니라도 혼자 보내는 날이 많기는 했거든요.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테이 앳 홈’ 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그 전에는 퇴근하고 동료들과 술 한 잔 하기도 하고, 요가원에 가기도 하고, 어쨌든 며칠에 한 번 꼴로는 일정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도시가 깊은 잠에 빠지면서 그런 소소한 일정들도 없어지고요. 재택근무도 컸어요. 사무실까지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까 퇴근시간이 되어서 노트북만 끄면 바로 내 개인시간이 되잖아요.


저녁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시간을 채워보려고 다른 일도 많이 했습니다. 산책을 나가고, 요리를 하고, 넷플릭스로 마음에 드는 시리즈를 보기도 하고, 심지어 인터넷에서 색종이를 사서 홀로 앉아 종이학을 접는 짓까지 새삼스럽게 시작했으니 말 다 했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혼자 술 한 잔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맥주엔 만두, 와인엔 치즈. 이런 식으로 술과 음식의 궁합을 하나하나 실험하다 보면 저녁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선데이수는 위스키도 아주 좋아하는데요, 속이 다 상하는 줄도 모르고 위스키 향을 느끼겠다며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걸 좋아했어요.



선데이수는 원래가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마셔보는 데 흥미가 있는 편이라, 맥주 와인 위스키 일본주 등등 종류별로 사다놓고 한두잔씩 마셔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더군요. 각각의 술마다 어울리는 안주도 준비해두었다가, 넷플릭스 켜 놓고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하루가 가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어요.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술이 잘 받는 체질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선데이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봅니다.


올해 초부터 조금씩 이상신호가 오더니 여름 정도에는 생전 앓아본 적 없는 위염이 와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위염이면 내과에 가야 하는데, 내과는 또 코로나 의심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가는 병원이기도 하니 “이걸 가야 돼, 말아야 돼?”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가 괜히 병을 키우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혼술을 끊기로 했습니다. 여럿이 모여서 한두 잔 하는 재미는 참을 수 없어서, 혼술만이라도 안 하기로 했어요. 한 번 습관이 된 걸 바꾸려고 하니 쉽지 않더군요. 한 번에 많이 마시던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두잔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참. 조금씩 자주 마시던 걸 끊는 게 더 어렵다면서요? 저녁에 퇴근할 때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못 참고 한 캔 마셨다가 다음날 위염으로 고생하는 날들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 단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도 술이 마시고 싶은 날에는 135ml 짜리 꼬마맥주를 사다가 한 입에 털어넣기도 했어요. 그러고 다음 날 또 속이 아파 고생하고요.


여러분의 코로나 시국은 어떠셨는지. 사회적 고립이든 스트레스든, 여러 이유로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습관을 가지게 되셨다면 새해를 맞아 서서히 줄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선데이수도 스스로 만든 ‘혼술금지’ 다짐을 새해에도 이어가보려고 합니다.



모니터에만 존재하는, 그러나 가까운 사이


7월 편에서 ‘장거리 연애’를 주제로 글을 썼었죠. 한국에서 만나 오래 관계를 이어 온 사람과 온라인으로 소통을 이어가는 데 대한 쓸쓸한 감정을 나눴었는데요. 이번에는 반대라면 반대인 이야기를 나눠볼까해요. 처음부터 온라인 모임에서 만나서, 모니터로만 만날 수 있었던 사이에 대해서요.


코로나 이전에도 우리에게 ‘도구’는 있었죠. 선데이수가 2010년에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에도 스카이프 화상통화는 있었으니까요. 그때도 지금도 똑같이 스카이프를 쓰는데 느낌은 확 달라요. 그때는 스카이프가 주류가 아니었잖아요. 선데이수처럼 아쉬운 쪽에서 스카이프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 상대방이 뻑적지근하게 설치를 다 한 다음에, 아주 특별한 이벤트처럼 잠깐 화상통화를 하고 결국은 ‘오프라인에서 다시 만나자’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세상이 많이 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모두에게 더 편할 거라고는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이전보다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선데이수도 올해 도쿄에 계시는 여러 분들과 온라인으로 모임을 시작했던 게 참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원래는 오프라인으로 교류하는 모임이었다고 하는데, 도쿄가 일본 안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제일 많은 지역이다보니, 올해 상반기부터 슬슬 온라인에서 만나기 시작했다고 해요. 선데이수는 온라인 모임으로 처음 합류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더군요. 오프라인에서도 왜, 처음 만나면 어색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서로의 물리적인 존재에 익숙해지면서 차차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요.


그 사람의 체격이나 목소리,
그 사람이 쓰는 향수 같은 것들.


선데이수는 서로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물리적 존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요, 이 온라인 모임과 함께하면서 마음이 좀 바뀌었습니다. 다섯 사람이 주말마다 온라인에서 만나서 어려운 책을 같이 읽었는데요, 석 달이나 걸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니터 속 인연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석 달 동안 함께 읽은, 천 페이지 짜리 엄청난 책입니다.
볕 좋은 날 벤치에 앉아 읽던 기억이 납니다. 벽돌처럼 무거운 책이라 이고 지고 다니느라 고생을 많이 했네요.


오프라인 모임에서였다면 각자 이름을 부르거나 했을텐데, 온라인 모임에서는 얼굴 아래 각자 설정한 닉네임이 뜨잖아요. 누군가는 영어 이름을, 누군가는 가타가나 이름을, 누군가는 별명을 적어놓았습니다. 서로의 본명을 다 아는데도 나중에 돌이켜보니 본명보다 닉네임이 더 뇌리에 깊이 남아있더라구요.


나중에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오프라인에서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오큘러스라는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들고 오셨더군요. 이것 참, 온라인 모임과 성격이 잘 맞는 콘텐츠라고나 할까. 각자 한 번씩 헬멧을 나눠쓰고 가상현실 속 적들과 맞서 싸우거나 하며 깔깔 웃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모니터로 서로를 만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헬멧 속 가상현실에서 서로를 만나게 될까요? 화상회의에 보여지는 나의 진짜 얼굴 말고 가상현실 속 아바타로 서로를 인식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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