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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Jan 03. 2021

불완전함 속에 완전함

우울증 일기 11

내게 누군가 올해 가장 많이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정리'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정리'하고자 했다. 시작은 작년 십이월 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직장인'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것은 이후 많은 정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발판 같은 것이었다. 

    정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의 그간의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우울증 환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거나, 최소한 그렇게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지금까지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을 터였다. 나는 그 일을 나름의 규칙적인 생활과 더불어 내 마음의 안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쯤으로 생각했고, 나의 집착이 담긴 많은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에도 무릇 목표가 있어야 만족감이 더 높을 것 같았다. 예전부터 서재가 있었으면 했는데, 이번을 기회로 내가 원하던 방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좁은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퀸 사이즈의 원목 침대를 과감히 처분해야 했다. 큰 서랍장이 딸려 있어 이층 침대는 아니지만 여느 침대보다 높이가 상당했다. 따라서 수납공간은 넉넉했으나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른 살 생일이 막 지난 주말 아침, 침대를 방에서 뺐다.


"원목이라 아직 멀쩡한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엄마는 동생이 침대를 모조리 분리하기 직전까지도 나에게 재차 되물었다. 물론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근래에는 침대에서 편안히 잠을 자지도 못할뿐더러, 나에게는 책상이나 책과 같은 물건들이 침대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언제든 베트남에서 아빠가 돌아오면 방을 원상태로 되돌려놔야 할 테지만 잠시라도 그 방의 소유권을 누려보기로 했다. 

    침대 밑 서랍장에 있던 옷가지들을 다른 곳에 수납하기 위해선 꽤 많은 정리가 필요했다. 별도의 옷장이나 수납장을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엔 침대 서랍장에 담긴 옷들이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다른 곳에서 비워내야 했다. 곳곳에 묵혀 놨던 물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막상 쓰는 물건들도 아닌데 끝없이 나오는 모양새를 보니 기껏 힘들게 번 돈을 참 열심히도 소비했다 싶었다. 나는 우울함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 해소하려는 좋지 못한 습관이 있었다. 한두 장 끄적거리고 방치해 둔 노트들이 여러 권, 누군가의 추천이나 베스트셀러라는 명목 하에 '언젠간 읽겠지'라는 마음으로 쌓아둔 책들, 뜯지도 않은 화장품들이 그 증거물이었다. 그것들은 내 마음의 안위와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정리를 하고 남겨진 물건들은 꼭 유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되려 쓸만하다고 판단되거나, 새 거와 다름없는 물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내 방에 남은 것들은 힘들 때 써둔 일기들, 몇 번이고 읽기를 시도했다가 끝내 다 읽지 못한 책, 여행 책자와 여행 사진들, 아직 기한이 7년이나 남은 여권, 대학 시절 썼던 필기 노트와 전공 서적들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내 주변을 충동적으로 혹은 타인의 말에 의해 사들였던 물건들이 아닌 보기에 편안한 것들로 채워놓고 나니, 나는 자연스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이 사라진 아침에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최소한 아홉 시 전에는 몸을 일으켜 세안을 하고 이불을 정리했다. 억지로 욱여넣던 아침밥은 생략하고 토스트기에 식빵 한쪽을 넣고 바삭하게 굽는 것으로 대신했다. 바삭하게 구워져 거칠어진 표면에 미끄러지는 버터를 슬쩍 발라 매끄럽게 만들고는 스타벅스 원두로 내린 블랙커피와 함께 책상에 앉는다. 그러고는 듣고 싶은 음악을 튼다. 이는 전날 밤 나는 무사했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언제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매일을 사는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리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은 '독서'였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자주 읽지는 않았지만, 회사를 다닐 땐 괜히 속이 헛헛한 마음이 드는 퇴근길에는 서점에 들르곤 했다.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허한 마음이 채워졌다. 종종 우연히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서점을 나오는 내 손에는 항상 회사일이 관련되어 있거나 프로그래머로서의 교양을 키워줄 수 있는 책이 들려있었다. 

    이제는 딱히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을 의무가 없어졌다. 나는 서점에 갈 때마다 때로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 때로는 겉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 때로는 제목이 눈에 띄는 책들을 한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다. 어느 자기 계발서 책을 읽다가 나는 책장을 삼십 분 가까이 넘길 수가 없었는데,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에 1억 달러가 있다면 매일매일 무슨 일을 하겠는가?'


나는 자문해보았다. 과연 내가 십여 년간 익힌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매일 한다면 삶의 이유를 느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은? 그 또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행복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나는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책을 매일 읽는 삶은? 매일 할 수 있을뿐더러 좋아하는 일이지만 흥분되거나 열정이 생기지는 않는다. 매일 글을 쓰는 삶을 산다면? 글을 쓰는 일은 항상 설레었다. 매일 질리지 않고 꾸준히 할 자신이 있으며,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늘 '꿈이 뭔가요?'였다. '꿈'을 생각하면 나는 다시 사춘기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어떻게 보면 '꿈'이라는 건,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배부른 목표 혹은 타고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전유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꿈'을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정도로 정의한다면, 나도 감히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졌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일은 노트북이나 책과 볼펜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다. 나는 불현듯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거나, 사업을 하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회의감이나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삶에 만족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앞에서 실수를 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떤 집단에 속하던지 조용히 묻어가는 편이 편했고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그저 무관심 속에 있는 것이 안전해 보였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기라도 하면 그것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고 경계하는 사람들과 있는 편이 낫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자의적인' 고독을 선택하기도 했다.

    내가 '우울증'과 결별하는 일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모든 소음과 말소리들을 수집하는 기계 같던 나의 머리는 가끔 누군가 하는 말을 놓치기도 하고,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재구성하던 일을 멈추고 간혹 가벼운 일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그동안 내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던 모든 일들을, 중독처럼 끊지 못했던 일들을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안전하며,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마다 인생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정신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병원 문을 열면 항상 대기하는 사람들의 익명을 보장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높이 서있는 파티션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 때로는 사무적으로, 때로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진료가 끝나면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해야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인 처방전에는 보통 '질병분류기호'가 적혀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받는 처방전에는 질병 분류 기호란에 항상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환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질병분류기호를 기재하지 아니합니다.'


처방전을 손에 꼭 쥐고 약국으로 향한다. 흰색 플라스틱 통에 받은 이 주일 치의 약을 받으면 또 한 번 마음이 깊이 가라앉는다. 단지 위로가 되는 건, 이제는 더 이상 약을 책상 서랍에 숨겨두고 먹지 않는다는 것, 가끔은 약을 먹고 자는 일을 깜빡한다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 감내하면서도 그렇게 익숙해지며 지낸다.

    시월의 끝자락에 J와 나는 다시 한번 제주도로 향했다. 여행은 아무리 열심히 계획한다 해도 어차피 하늘에 뜻을 맡겨야 함을 지난번 여행에서 깨달은 바, 별다른 준비 없이 무턱대고 떠났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평화로웠다. 아직 겨울 치고는 온화한 날씨 속에서 길고 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있자니 마치 우리의 시간만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 그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창 너머로 우드톤의 테이블과 한 쌍을 이루는 단풍나무가 감싸고 여전히 눈이 부신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커피숍에선 아직은 이르지만 머라이어 캐리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다. 올해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는 알람 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신과 약을 복용한 지 약 삼 개월이 되었다는 사실도 느끼게 해 주었다. 두 달간은 지극히 차분했던 성격이 요즘은 부쩍 다시 짜증도 생기고 약간의 우울감도 생겼다. 이쯤 되면 계절성 우울증을 스스로 의심해볼 만했다. 하지만 같은 우울감이라 하더라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나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불완전함 속에서 찾은 안정감이라고 해야 할지, 미움으로 쌓인 일종의 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받은 진료에서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울증은 결국엔, 나 자신에게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 보세요."


그동안의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던 우울함이 이제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닌 나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주는 마음속의 통로가 된 걸지도 모른다. 살면서 무수히 삼켰던 가시 같은 말들과 생각들을 게워내는 일도 한 번쯤은 경험해볼 필요가 있던 것이다. 무사히 목구멍을 넘겼을지라도 몸속에 돌아다니며 내가 움츠러들 때마다 한 번씩 저마다 찔러내는 가시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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