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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Dec 12. 2020

나에게 묻다

우울증 일기 8

    나뭇가지에 간신히 붙어 있던 잎사귀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잎사귀들은 마치 새무리처럼 한쪽 방향으로 날아가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높이 떠올라 산 능선 위로 여러 번 공중제비를 하고 땅에 떨어졌다. 그제야 낙엽이 되었다. 전날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들은 말이 아침부터 스산한 시월의 날씨와 함께 맞물려 나를 괴롭게 했다. 의사는 한 번에 정확히 열네 알의 항우울제를 처방해 주었기에, 나는 2주마다 병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반복되는 진료는 늘 같은 말로 시작했다.


"좀 어떠세요?"


나는 이미 그 질문을 받을 걸 알면서도, 가끔은 대답을 미리 준비하면서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의사보다도 정신과 의사 앞에서는 솔직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똑같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와 같은 말들로 대체했다. 


"좋아지는 것 같아요. 감정 기복이 많이 줄었어요."


사실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스스로를 '성격 장애'로 취급해왔던 지난 삼십 년이 무색하게도 약을 복용한 뒤로는 화를 낸 적도 없었고, 허구한 날 흘리던 눈물도 언제 마지막으로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삼 개월 정도 복용하고 나면, 슬슬 약을 줄여나갈 생각도 해야 해요."


당황스러웠다. 이제야 좀 숨을 쉴 것 같은데, 이제야 평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데 왜 약을 끊어야 할까. 바보 같은 생각만 맴돌았다. 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고 점차 줄여가는 게 맞는다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억울하고 속상했다. 진료는 거의 같은 말로 끝이 났다.


"항상 말씀드리다시피, 밖에 나가서 햇빛을 잠시라도 보는 것. 정말 중요해요. 힘드시겠지만 꾸준히 움직이고, 취미를 가져야만 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화도 내지 않고 울지도 않아서 편안해졌지만 그런 내가 너무 낯설었다. 과잉으로 예민한 성격이 나에게는 더 자연스러웠다. 어떤 모습이 나의 모습인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무엇인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내가 전과는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 좀 달라진 것 같아?"
"응."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이 금방 대답이 나왔다. 나는 다시 물었다.


"좋은 쪽으로?"
"글쎄."


이번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나는 당연히 내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울고, 화내고, 짜증 내는 모습을 보였던 딸이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음에도 어째서 더 나아졌다고 확신하지 않을까. 엄마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네가 편해 보여서 좋은데, 그게 더 나아졌다고 해야 될지 잘 모르겠네. 어찌 됐건 마음 편한 게 낫지 않아?"


엄마도 낯설어진 딸의 모습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음날 J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는 토요일 저녁 데이트를 마치고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긴 터널에 들어서자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그에게 물었다. 


"나 요새 좀 달라진 것 같지?"
"글쎄."


그는 내가 아무리 가볍게 말을 던져도 나에 대한 질문에는 늘 신중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달라진 거라면... 좀 차분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럼 더 좋아진 거네?" 내가 말했다.
"난 그전에도 좋았는데? 너는 너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J는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나를 걱정하는 듯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그때서야 안심하며 말을 했다.


"그럼 좋은 거네."


    자기 전 잊지 않고 책상 왼편 작은 서랍에 숨겨놓은 약을 꺼낼 때면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생명줄같이 느껴지는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알약을 손바닥에 놓고 바라보면 나 자신이 비참하기도, 불쌍하기도, 한심하기도 했으며 스스로 미안하기도 했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에서는 벗어났지만 마음이 무척이나 공허했다. 그럴 때면 울고 싶었다. 속으론 울고 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문장이 맴돌 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엄마도, J도,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인정했지만 더 좋아졌다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어쩌면 가까운 두 사람으로부터 내가 약을 복용하고 난 후의 모습이 더 낫다는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혹은 그들이 그렇게 말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달 전쯤 정신과에서 받은 심리 검사 결과지를 놓고 의사와 면담을 할 때에도 나는 나의 예민한 성격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 기복으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해서 병원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 누구도 내가 더 나아졌다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나'에게 물어야 했다.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드느냐고. 조금은 달라진 모습이 낯설지만 이제 좀 편안해지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화내거나 울지 않아서 좋지 않으냐고 말이다. 나는 '나'와 대화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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