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가 애정하는 시 6

by 유작가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교과서에서 이 시인의 이름과 그의 작품을 한 번 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한국 대표 시인이자 영문학자, 본관은 제안(齊安)이고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의 장남이기도 하다. 주옥같은 시들이 정말 많지만, 그의 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문득문득 떠올라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 <즐거운 편지>. 이 시는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1970년대나 80년대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1958년이라는 연도를 알게 된 순간... 이 시의 울림과 깊이가 더욱 진해진다. 1950년대 감성이 2020년에도 동일하게 통하는구나. '사랑'은 전 시대, 전 민족, 전 세대를 통틀어서 사람들이 가장 공유하기 좋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을 이 시에서는 '편지'를 매개로 나타내고 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일이 사소한 일이 되어버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때가 올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사소한 일을 오랫동안, 성실하게 지속해왔을 때 그것은 엄청난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떠한 괴로움 속에서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 사람을, 힘껏 안아주고 위로하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과 친숙함은 절대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없고 새 것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다.


1연에 이어, 2연에서는 진짜 연애 편지가 시작된다.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이 기다림에 있다고. 요즘처럼 감정 표현이 빠르고 적극적이고 일회적인 세대들은 이 시가 주는 여운과 감동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든 사람이 갈구하고 공유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랑'이 근본적으로 영원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파괴하기도 어렵고, 완성이 되어지기까지도 어쩌면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에 '일회적'이란 단어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수 없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는, 1997년 개봉한 영화 <<편지>>에서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남편 환유(박신양 역)의 부탁으로 아내 정인(故 최진실 역)이 읽어준 시로도 잘 알려져있다. 시를 읽는 도중 남편의 숨은 끊어지고 그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시를 읽어 내려가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내에게 이 시는, 평생을 두고 기억할 영원한 사랑의 약속이 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이지만... 언젠가는 사랑도 그칠 테지만, 그 사이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 그 기다림의 자세가 성실해서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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