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사랑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내가 애정하는 시 7

by 유작가

첫눈에 반한 사랑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이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 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 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 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 놓은 여행 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오늘 소개한 시는, 폴란드의 시인이자 번역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다. <<끝과 시작>>이라는 그녀의 시선집에 들어있는 이 시는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제목답게,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장면 장면이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낭만적이다.


실제로 이 시가 매개체가 되어서 배우 금성무, 양영기가 주연한 홍콩 영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向左走, 向右走: Turn Left, Turn Right)>>라는 영화도 2003년에 개봉했다. 사실 나는 대학교 1학년 공강 시간에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을 기웃대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러다 영화 속에 담긴 시를 알게 됐고,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라는 아름다운 여류 시인의 시에 빠지게 됐다.

그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법을 반영한 꾸밈없고 섬세한 언어로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을 찾아봤더니 노년의 나이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시만큼이나 그토록 우아하고 온화한 얼굴을 가진 그녀가 진심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영화 역시 2000년에 대만의 '장 자끄 상뻬'로 통하는 지미 리아오의 그림책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다. 내용인즉슨, 같은 건물에 살지만 늘 현관문을 나와 왼쪽으로만 가는 여자와 오른쪽으로만 가는 남자가 외로운 도시 생활 중, 수많은 엇갈림 속에서 결국 서로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 이어 그림책까지 3층 어문학 자료실에서 찾아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면서 느꼈던 그 행복감과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갖고 싶어서 한참을 수소문하다가 끝내 찾지 못했는데, 내 생일날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 한 친구가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 선물해주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무수한 인연들이 사실은 그냥 인연이 아니라, 언젠가는 꼭 만나기로 계획된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또 앞서 소개한 영화를 보다 보면 알게 된다. 운명이란 얼마나 장난 같은 것인지와 동시에 그런 불확실성과 우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만들어 내는지를. 수많은 암시와 신호들 속에서, 또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다시 당신의 어깨 위로 옮겨간 나뭇잎을 통해,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던 목소리 너머로, 회전문 반대편에서, 방금 내가 머물렀던 그 장소에서... 당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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